지방의 기업체 대상 강연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하소연이 ‘직원 뽑아서 겨우 일할 만하면 나간다’는 이야기다. 뿌리 깊은 배신감 때문에 새로 직원을 채용하는 일 자체가 두렵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기업에 들고 나는 개개인의 입장에서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일할 만큼 하다가 사정이 생겨 퇴사하는 건 내 당연한 권리인데 대체 왜 회사가 배신감을 이야기하나? 내가 노예였나? 무슨 이면 계약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하며 불쾌하게 여기기 십상이다.

 

게다가 개인에 비해 강자일 수밖에 없는 기업이 이별의 순간에 횡포를 부리는 일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출근했는데 책상이 치워져 있다거나, 정당한 사유도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해 온다거나, 해고 통지마저 휴대폰 문자로 보내온다거나 하는 폭력적인 방식들이 그렇다. 미래를 위해 투자할 줄 모르는 조직에서는 인력을 채용하면 어떻게 해서든 그가 가진 것들을 톡톡 털어 활용할 생각만 하고,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 싶으면 은근슬쩍 조직 밖으로 밀어내려 들기도 한다.

 

조직으로부터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극심한 울분과 배신감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얼마나 회사에 기여했는데, 뼈 빠지게 일하며 그토록 헌신했는데, 그런 나를 헌신짝처럼 내다 버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기업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다. 그러니 필요에 의해 직원 수를 줄이는 것은 회사의 당연한 권리인데 왜 도의적인 책임까지 져야 하느냐고, 직원 한두 명 끌어안으려다가 회사가 통째로 무너져야 옳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서로의 관점에 따라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직원을 훈련시키고 성장시킨 회사의 공이 크다고 여기고, 직원 입장에서는 자신이 조직의 성과와 발전에 기여한 공이 더 크다고 여긴다. 누가 더 옳은가, 정답은 없다. 정당한 과정과 절차는 따질 수 있을지언정, 입장의 차이를 놓고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함께 일하던 직원이 회사를 나간다고 할 때 유난히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아쉽고 서운한 생각부터 그동안 쏟았던 애정이 허망해지는 느낌,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한 듯한 느낌에서 비롯되는 자괴감까지……. 그런데 얼마 전 나의 이런 태도가 적잖이 바뀌게 된 계기가 생겼다. 다른 직원이 아닌 나 자신이 <커리어 케어>를 떠나면서였다. 자리가 잡힌 회사에 들어가 일하다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손으로 직접 일구고 가꾼 조직을 떠나려니 감회가 복잡했다. 오래 앉았던 자리를 떠나면서 시원섭섭한 마음, 남겨진 이들에 대해 미안하고 고맙고 애틋한 마음, 서로 잘해 냈다는 뿌듯함과 앞으로 더 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어쨌건 헤어짐을 기정사실화하고 조직 내에 그 사실을 알린 뒤, 직원들이 나를 위해 환송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는 직원이 있었다. 함께 일해 온 정이 있으니 헤어짐이 섭섭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그의 눈물이 그런 뜻으로만 전해지지 않았다.

 

‘아! 이 사람들, 내가 끌어 모은 사람들! 나와 같이 가자고, 우리 함께 미래를 도모해 보자고, 나만 믿고 따라 달라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인데!’

이런 생각이 불현듯 뒤통수를 때렸다. 그랬던 내가 혼자서 내 갈 길을 가겠다고 나서는데 과연 이들이 서운하기만 할 것인가, 허탈할 것이고, 속은 기분도 들 것이고,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날 나는 내가 떠나는 것이 그들이나 그들과 함께 일군 조직에 한계를 느껴서가 결코 아니라는 점, 또 서로의 인연이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함께 도모할 미래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직원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중언부언 여러 이야기들을 쏟아놓았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 회사를 떠나겠다고 하면 서운한 생각부터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내 입장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도 최대한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상황이 훨씬 더 객관적으로 정리된다. 그래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다. 서로 간에 상처를 주는 일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떠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좀 더 길게 앞날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당신이 이유가 있어서 떠나는군요. 그럼 잘 가시오.’ 하고 돌아서 버릴 것이 아니라 ‘지금은 여기서 각자의 길로 가지만 곧 다시 만납시다.’ 하고 미래를 열어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당장을 생각하면 어렵다. 그러나 딱 3년 뒤를 떠올리면 쉽다. 그러면 어렵고 미묘한 이별이 뜻밖에 간단한 문제가 된다.

 

 -위즈덤하우스, 신현만 지음 『능력보다 호감부터 사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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