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그라피아를 가진 대표적인 아웃사이더를 들라면 아서 크루 인먼Arthur Crew Inman이 있다. 1895년 아틀랜타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인먼은 21세의 나이에 극심한 신경쇠약을 겪고 대학을 중퇴한 후 보스턴의 한 아파트에 은둔하여 거기서 여생을 보낸다. 그는 빛과 소리에 극도로 예민했기 때문에 외부와 차단된 어두운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는 심한 육체적 고통과 절망감을 호소했고, 그 무언가가 그로 하여금 이러한 고통들을 끊임없이 기록하게끔 만들었다.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 결국 1963년 보스턴의 프루덴셜 빌딩 건설현장에서 나오는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권총 자살한다. 그가 남긴 일기는 155권, 1,700만 단어에 달한다. 이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긴 일기일 것이다. 인먼은 생존 당시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였다. 1919년 은둔한 이후 일절의 진료행위를 거부했고, 간질을 진단할 수 있는 뇌파장치는 1929년에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일기를 자세히 분석한 전문가들은 그가 ‘측두엽 간질’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먼 또한 하이퍼그라피아를 포함한 게슈빈트 증후군의 대부분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측두엽 기능장애가 있을 때 하이퍼그라피아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나 소통의 욕구는 변연계에서 일어난다. 측두엽은 변연계와 가장 많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대뇌 겉질이다. 측두엽와 변연계의 연결구조에 변화가 생기면 외부의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따라서 환자는 모든 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철학적이고 종교적으로 다루려 하고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또한 측두엽 장애가 좌우 어느 쪽에 있느냐도 중요하다. 하이퍼그라피아는 주로 우측 측두엽 간질 환자에서 나타난다. 우측 측두엽 기능에 장애가 생기면 언어를 담당하는 좌측 측두엽의 기능이 항진되고 결과적으로 글쓰기가 병적으로 증가한다.

고흐의 성격 중 일부는 게슈빈트 증후군에도 잘 맞는다. 고흐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 대상을 우상시했다. 첫 사랑 사촌 케이, 스케치 ‘슬픔’의 주인공인 창녀 시엔, 열두 살 연상의 농촌여인 마르호트, 탕부랭 카페 주인 세가토리, 마지막 사랑인 가셰박사의 딸 마르게리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랑은 무모했고 비극적이었고 실패로 끝났다.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손등에 불을 지지기도 했다. 고갱과의 다툼 후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도 유명하다. 고갱도 고흐와의 대화를 중단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회상하고 있다. 고흐의 공격성과 지나친 친근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고흐가 그런 병들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예술혼을 피워 걸작을 만들어냈을까? 혹시 고흐가 가진 병들이 그의 창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고흐가 화가로 활동한 기간은 1880년부터 1890년 자살하기까지 10년 정도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간질증세는 1888년경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질 발작 후 고흐의 그림들은 보다 역동적이고 격정적으로 변했다. 고흐의 그림에서 보이는 소용돌이는 단순히 그의 혼돈스러운 정신상태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고흐의 작품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과학자들은 그의 그림 속 휘몰아침이 실제 자연에서 관찰되는 난류의 물리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멕시코 국립대학의 물리학자 호세 아라곤 교수는 고흐의 말기 세 작품, ‘별이 빛나는 밤’(1889년),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1890년),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년)에 나타난 휘몰아침이 실제 소용돌이치는 물살이나 제트엔진의 분사가스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강동화 지음, [나쁜 뇌를 써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