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말해두지만 어학연수를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미국에 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오후 3시가 되면 랭귀지 스쿨의 유일한 미국인 선생님은 휑하니 가버리고, 아시안들끼리 모여 거리를 배회한다. 그런 그들에게 말이라도 한 마디 걸어 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것이다. 우리는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이나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볼 때 먼저 호감을 갖고 말 한 마디라도 걸어 주는가?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바로 미국에서의 우리 모습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키 작고 누런 피부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래서 그들에게 약간은 미개인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누가 우리더러 미개인이래?’ 하고 따질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자존심 상해도 그게 현실인 걸 어떻게 하겠는가. 어쨌든, 유학만 가면 매일 외국인과 지내며 CNN에 《TIMES》만 보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다 꿈 같은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 먹고, 용돈 타가며 편하고 한가롭게 지낼 때도 보지 않던 신문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신문을 외로운 타국 땅에서, 그것도 혼자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볼 것 같은가? 친절한 한국인 선생님이 옆에 붙어 앉아 가르쳐 주어도 마냥 어렵기만 했던 어려운 내용을 혼자 독파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없으면 더 찾는 것이 사람 심리라고 했던가. 향수병 운운하며 끼리끼리 모여 한국 비디오나 비싼 돈 주고 빌려 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Korea Times》를 사서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읽는 것이라면 다 《Korea Times》요, 보는 프로는 다 CNN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영어가 평생의 한이며 넘기 힘든 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 민족이 아무리 오기와 인내, 끈기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정말 미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해서는 영어 실력이 늘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운 신문을 뒤적이기보다는 우선 서점으로 가라. 거기서 아주 얇은 소설책을 골라라. 일단 우리말로 본 적이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아니면 좋아하는 배우가 나왔던 영화 책이라도 상관없다. 여자라면 고등학교 시절에 한두 번쯤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소설도 괜찮다.

 

동화책도 권장하고 싶은데, 두 개 정도의 짧은 테이프가 들어 있는 것을 사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듣고 다니는 것도 회화 실력 향상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동화책이라고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동화책 이십 권만 외우면 영어로 말싸움을 해도 지지 않는다. 혹자는 만화책이 쉬울 거라고들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오히려 난잡한 슬랭에 baby- talk가 대부분이어서 우리에겐 난해할 뿐이다. 난 아직도 심슨 가족을 볼 때면 가끔씩 놓치는 말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본 문법책은 호주의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교재였다. 《English Grammar in Use》라는 이 책은 글씨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이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가 보았을 ○○영어만 봐도 기가 질리던 나에게, 그 유치원 교재는 구세주 같았다. 나는 그 책을 세 번 샀고 세 번 버렸다(나는 책을 매우 지저분하게 본다).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문법책을 본 적이 없다.

 

-유수연 지음,『23살의 선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찾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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