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밤, 나는 별의 잔해였다

“자, 이곳에 오셨군요. 이제 여기서 당신이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해보세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열일곱 소녀 아키(나가사와 마사미)가 열일곱 소년 사쿠(모리야마 미라이)와 함께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곳.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울룰루를 찾아가기 위해 늦은 오후 코넬란 공항에 내리자, 벽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하고 싶은 일이라.

영화 속 두 어린 연인, 아키와 사쿠의 부서진 꿈만을 바라보며 떠났던 여정의 초입에서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 질문을 받자 잠시 당황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그려놓고 간절히 소망했던 게 언제였던가. 영화 속 남의 꿈을 나의 현실로 잠시 바꿔 체험하려는 게 목적인 영화 기행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맞닥뜨린 예기치 않은 물음이었다.

그러나 좋은 질문에는 이미 답이 들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한가운데, 끝없는 지평선으로 광대한 원을 그리는 사막은 자신의 작은 꿈조차 쉽사리 떠올리지 못하는 경직된 여행자에게 작지만 황홀한 해답 하나를 쥐어줬다. 그것은 온통 별로 가득한 밤하늘이었다.

꽤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또렷한 은하수가 넉넉히 하늘가를 흐르고, 크고 작은 별들이 하얀 쌀가루처럼 창공에 조밀하게 흩어져 있었다. 청각으로도 빛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서로 몸을 맞대고 반갑게 비비기라도 하듯, 평상에 드러누워 끝없이 속살거리기라도 하듯, 별들은 일제히 소리를 냈다. 별이 별을 부추기고 별이 별을 흔들어 깨우는 압도적인 풍경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현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 밤, 나는 별의 잔해였다.

02 세상의 끝

그토록 별들이 밝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호텔 몇 개와 편의시설이 모여 있는 에어즈 락(울룰루의 영어 이름. 울룰루는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 언어의 명칭이다) 리조트를 제외하면 반경 수백 킬로미터 이내가 인적이 거의 없는 사막이기에 가능했다. 별이 빛을 내기 위해서는 칠흑 같은 어둠이 필요했다.

 

백혈병을 앓는 아키와 그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던 사쿠의 사랑은 불능으로 가득한 사랑이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그들은 울룰루에 함께 가자는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두 개의 계절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겨우 열일곱 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는 도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일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흠 없고 고결하기 때문은 아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이 아니라 곳곳에 감춘 흉터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 당도하지 못하는 사랑, 되돌아가는 사랑, 심지어 끊어지고 마는 사랑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고 강변하게 되는 근거는 명확하다. 사랑이란 도착 지점이 아니라 여정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이니까.

 

사랑에서 고통과 한숨과 불면을 제외하고서 기분 좋은 감정만을 따로 떼어내 기억할 수는 없다. 사랑이란 그 모든 것이 함께 녹아 있는 경험이니까. 모름지기 별빛의 찬란함은 어둠의 서늘함과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世界の中心で, 愛をさけぶ, 2004)

 

연출 : 유키사다 이사오

출연 : 오오사와 다카오, 시바사키 고우, 나가사와 마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