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우가 데려간 곳은 허름한 재래시장의 다 쓰러져 가는 국밥집이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주연은 어쩔 수 없이 국밥을 먹었다. 불결해 보이고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이깟 국밥집에서 먹은 국밥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니……국밥집을 나오자마자 주연은 짜증을 부렸다. “고작 이런 거 먹으러 왔어요? 정말 인우 씬 부잣집 아들이 왜 이렇게 싸구려 틱 해요?”

“예전에 가진 거 아무것도 없이 끼니조차 걱정해야 했을 때는 세상이 미웠어요.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차라리 속이 후련할 것 같았죠. 그때 이 시장을 지나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저 솥을 보고 서 있었어요.”

인우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솥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인우는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듯 솥을 보며 말했다.

“그때 예전 여기 주인이던 아주머니가 국밥 한 그릇을 떠주면서 그냥 먹으라고 주셨죠. 그 아줌마는 지방에 있는 대학에 아들을 보내기 위해 집도 없이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돈 한 푼 안 받고 배고픈 사람한테 국밥을 주는 그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그 국밥 한 그릇이 아니었으면…… 전 다른 인생을 살았을 거예요. 여전히 세상을 미워하면서…… 증오하면서……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아파트 한 채도 아니고 몇 십억 로또도 아닌 국밥 한 그릇 때문에 인생이 바꿔요? 참 소박하시네요.” 주연이 빈정거리자 인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움을 주는 사람한테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이 될 수도 있어요. 사소한 도움을 받고 인생이 송두리째 변할 수도 있는 거죠. 세상이 살 만한 거라고 느끼게 되니까요.”

집에 오면 착한 순례 할머니가 밥을 지어줄 텐데 왜 주린 배를 하고 이 시장을 돌았을까. 혹시 뭔가 크게 잘못해서 집에 들어갈 상황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국밥 한 그릇에 어떻게 인생이 바뀌었을까. 그때 주연은 인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연은 문득 인우 지갑에 있던 낡은 사진이 떠올랐다. 찢어지게 가난해 보이는 가족들. 부모님과 줄줄이 달린 아이들 중 한 명이 인우 아니었을까. 인우는 국밥집 아줌마가 건네준 국밥 한 그릇이 너무나 감사했을 것이다. 그 아줌마가 혹시 인우가 총무로 있던 고시원에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꼭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고시원에 불이 났을 때 인우가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구한 건 그 아줌마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사실이라면 인우의 인생은 국밥 한 그릇 때문에 변했다는 말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