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리모델링 공사는 할 거야? 말거야?”

주연은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R라이프의 제안을 노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인우가 말을 한 모양이었다. 하긴 인우는 노인이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저기……그게…… 지금 있는 인력으로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건 무리에요. 게다가 제가 현장에 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사무실 매출이 떨어질 거고 그렇게 되면 전체 매출이 오른다고 볼 수도 없고.”

“막 노동판에 가서 일하기 싫다는 말 아냐!”

주연은 정확하게 심장을 꿰뚫는 노인의 말에 뜨끔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고.”

“해!”

"네?”

“하라고, 당장! 내가 말했지? 고인 물은 썩어! 나가 봐.”

주연은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인우에게 봤다. 그러자 인우는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생각도 그래요. 계속 따라하는 업체도 생기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주연 씨가 지금보다 많이 힘들겠지만 해 볼만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전보다 더 열심히 도울게요.”

주연은 지독한 노인과 바른 말만 하는 인우를 번갈아 흘겨보며 생각했다.

‘내 앞에서 좋은 말을 하건, 나쁜 말을 하건, 바른 말을 하건 전부 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마찬가지야.’

주연은 사무실을 나와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 반짝인다고 하던데, 이보다 더한 어둠은 없는데.’

주연은 고개가 아플 때까지 오랫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나를 흔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내가 흔들릴 뿐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내가 스스로 힘들어 할 뿐이다.

나를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내가 붙잡고 있을 뿐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내가 괴로워할 뿐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흔들리고 있는 나를, 힘들어 하는 나를, 붙잡고 있는 나를,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도 또다시 일어서고

하지만 언제까지.

-위즈덤하우스 『프라다가방을 든 노숙자』 중에서-

전화기 너머에서 황사장을 껄껄 웃으며 주연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오사장이 먼저 전화를 해주고 정말 기분이 좋은데? 오사장이야 재능도 있고 감각도 있는데다 어려운 일도 겪었으니 이제 쭉쭉 뻗어나가는 일만 남았어. 난 오사장이 대한민국 인터넷쇼핑몰의 일인자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그래, 바로 저거였어.’

주연은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황사장은 항상 주연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해서 같은 편이 되어 주는 척했다. 그래서 주연은 황사장과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세금 문제만 해도 황사장은 얼마나 아깝고 속이 상하겠느냐며 주연이 듣고 싶은 말만 했었다.

주연은 그런 황사장을 믿었다. 그가 주연이 없는 곳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 상상하지 못한 체 말이다. 싫은 소리는 그게 진실이라도 귀를 닫아 버리고, 듣기 좋은 말은 거짓이라고 해도 믿고 싶었던 주연은 종이장보다 얄팍한 인간관계를 지속하며 사람들이 왜 자신을 배신하고 등지는 지 서운해 하고 슬퍼했었다. 처음부터 결과가 빤히 보이는 만남을 전부라고 믿고 있었던 주연은 가슴속으로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를 배신한 게 아니라 나는 배신할 사람들만을 찾아다니며 진정한 친구라고 여겼던 거야.’

노인의 사무실에 가보니 인우와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세상에게 가장 독한 말을 거침없이 하는 노인과 바른 말만 꼬박꼬박 하는 인우를 보면서 적어도 이들은 겉과 속이 다른 말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주연은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