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필요한 것이다.”

_토머스 칼라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알게 된 ‘골드미스’가 있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들어가는데 아파트 주차장 어귀에서 그 골드미스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콧김을 씩씩 내뿜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내 참, 기가 막혀서. 아니 어디다 대고 아줌마래?”

자초지종을 들어보지 않아도 상황이 그려졌다. 주차 문제로 누군가와 말다툼이 붙었는데 상대방이 그녀를 ‘아줌마’라 부른 것이다. ‘아줌마’라는 말을 들은 것이 못내 분통이 터졌는지, 평소 인사성이 밝았던 그녀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치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크게 울리며 걸어갔다. 대한민국에 ‘아줌마’란 호칭을 달가워하는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그 골드미스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말할 것도 없겠지만, 30대 중반인 내 딸도 시장 같은 곳에서 누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기분이 확 상한다고 한다. 버젓이 아이를 옆에 끼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여성들에게 그토록 반감을 유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은 아줌마를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하지만 낮춤말이 문제의 핵심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갖는 전형적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이 클 것이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로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나기 무섭게 엉덩이를 디밀고, 빈자리와 거리가 멀면 가방부터 던지고 보는, 억척스럽고 그악스러운 이미지 말이다. 직장에서도 ‘아줌마’라는 신분은 자의든, 타의든 암묵적 핸디캡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한 후배의 이야기다. 20대 중반, 한창 일에 대한 열정과 의욕으로 넘치던 후배는 어느 날 남자 상사로부터 대단히 불쾌한 소리를 들었다. “여기자가 일을 아무리 잘해도 결혼해서 애를 낳고 나면…….” 당시 후배는 어디서 그런 성차별적 발언을 하느냐며 펄펄 뛰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보니 그 상사의 말뜻을 절감했다고 고백했다. 맞벌이라 해도 육아와 가사라는 육중한 짐이 여성에게 주로 지워지다 보니 결국 회사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 사실이 무척 괴롭다는 것이다. 후배는 “마음껏 일을 하려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아줌마가 되는 것이 커리어의 발목을 잡는다고 여기는 여성들은 많다.

그런데 세 아이의 엄마로, 평생 일하는 엄마로 살아온 나는 ‘아줌마’ ‘어머니’에게는 남다른 경쟁력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경쟁력은 ‘힘이 세다’는 것이다. 2007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발표한 ‘한국인의 근력 측정 결과’에 따르면, 전 연령대 여성 중 30∼40대 주부가 근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사노동과 육아 등으로 근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빅토르 위고의 명언이 그저 문학적 수사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 어머니가 되면 인지능력과 주의력, 문제해결 능력이 훨씬 강화된다. “애를 낳으면 없던 건망증도 생기고 두뇌회전이 영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던데……” 하며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한 신문의 과학칼럼에 실렸던 내용에 따르면, 영국 유력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는 2008년 10월 과학계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여자는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해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두뇌기능이 강화된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 버지니아 리치몬드대학 신경과학과 크레이그 킨슬리(Craig Kinsley) 교수 연구팀에서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여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여성이 엄마가 되면 아기와 잘 지내면서 외부의 도전에 좀 더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된다”고 한다. 다음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이다.

“임신한 여자는 한때 뇌기능이 저하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며, 이후에는 아기와 더불어 앞으로 경험할 여러 도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다. 그런 변화는 남은 인생에 중요한 능력을 미치며 특히 인식 능력이 향상되고 질병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도 증가된다.”

다시 말하면 아기를 기르면서 기억력이 향상되고 주의력이 깊어지며, 민첩하게 행동하는 능력을 갖춰나가면서 ‘엄마’로 진화해간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아줌마가 된다는 것은 체력과 지력과 탁월한 행동 능력을 겸비한 ‘슈퍼우먼’으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머니가 강하다는 것은 굳이 과학적 설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 나는 그 이유를 두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싶다. 자식을 키워본 어머니들은 알겠지만, 어머니에게 자식이란 애인과도, 남편과도, 부모와도 다른 특별한 존재다. 그리고 육아라는 것은 배려와 돌봄의 미덕, 소통 능력, 책임감을 기르는 지난한 훈련이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정의를 빌자면, “자식을 갖는 것과 같은 경험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으며 우리는 자식을 통해 타인에 대한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t; align="left"> 

이렇게 ‘타인에 대한 완벽한 책임’을 경험하고 감당하는 가운데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맛보게 되고, 그러면서 ‘어머니’라는 그릇은 더욱 커지고 점점 단단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담금질한 내공은 조직에서도 대단히 쓸모가 있다. 어머니로서 쌓아온 돌봄과 배려, 인내와 신뢰의 미덕이야말로 오늘날 다양성이 존중되는 지식사회에서 각광 받는 ‘섬김의 리더십’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줌마’가 되는 일이 핸디캡이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삶의 균형을 잡고 인내와 신뢰, 배려와 소통의 미덕을 갖춰가는 내공 수련의 스파르타 코스요, 그 어느 코칭 프로그램보다도 우수한 21세기형 리더 양성 코스라고 믿는다. 기왕 ‘아줌마 도로’로 들어섰다면, 신나게 달려보자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