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바들바들 온몸을 떨면서 말없이 방을 나가고 나자 그는 현관 밖으로 나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애쓰며 서 있었다. 이제 바깥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래쪽 강가에서 얼음 갈라지는 소리, 유리가 마찰되는 소리, 거친 바람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고 거기에 물 흘러내리는 소리가 한데 어울려 들렸다. 안개가 서서히 땅 아래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떠오른 하현달이 무엇인지 검고 무서운 것을 음울하게 비추면서 안개의 장막 뒤에서 서서히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게 일어난 이 일은 커다란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하고 그는 자문했다. '언제나 마찬가지겠지. 누구든지 이렇겠지.'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자기 침실로 갔다. - 본문 113쪽 중에서 -

이 조서의 낭독은 한 시간가량 계속되었으나 검사보는 만족하지 않았다. 조서의 낭독이 끝나자 재판장이 그에게 말했다.

"내장 해부 보고 낭독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 그 해부 보고 낭독도 필요합니다." 검사보는 재판장을 보지 않고 몸을 비스듬히 일으키면서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그 어조에는 이 낭독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권리로서 누구에게도 이를 양보하지 않겠다. 만약 거부당한다면 상소라도 하겠다는 기세가 엿보였다.

탐스럽게 기른 턱수염에 호인 같아 보이는 눈꼬리가 처진 판사는 위병을 앓고 있어 몹시 피로를 느끼는 듯 재판장에게 말했다.

(1부/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