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강의를 하면서 독후감 과제를 내면 절대 다수의 학생들이 '사람의 아들'에 대한 독후감을 냅니다. 이문열의 작가로서의 위치가 크다는 것을 말하겠지요. 하지만 대개 그 소설 뒤에 붙어 있는 교수의 서평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의 독후감을 써냅니다.

저나름대로의 다른 해석을 내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자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지만, 심층적으로 읽어나가면 다음과 같은 해석도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서는 예수가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표현 중의 하나입니다. 당시 언어로서 별 뜻은 없고 '그냥 나 이 사람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의 사람에 불과하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혹자는 왜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불합리하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민요섭이 다시 기독교로 회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에서 민요섭과 조동팔은 성경에서의 예수와 가룟 유다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 설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고, 귀족들은 로마세력에 빌붙어서 민중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열혈당원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로 치면 김구 선생처럼 폭력에 의한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예수에게서 그런 독립운동의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따랐던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에서 메시아는 종교적인 구세주라기 보다 정치적인 해방의 지도자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예수 자신도 유다와 같은 열혈당원은 아니었지만, 결국 정치범으로 처형당했다는 점에서 유다의 입장과 전혀 다르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다나 아하스 페르츠, 조동팔은 물질적인 분배에만 치우쳐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 사랑의 세계에는 눈뜨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받는 것도 빵만으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악마의 시험입니다. 빵 없이는 살 수 없겠지만,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점에 기독교의 정신이 있습니다. 민요섭은 그것을 깨닫고 아하스페르츠를 버리고 기독교로 회귀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적 분배를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거의 공산주의와 같은 공동생활을 했고, 공동생활에서 사적으로 사유재산을 축적하거나 숨기는 사람은 혹독한 벌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라는 것이지요.

조동팔은 유다가 예수에게서 폭력혁명지도자의 모습을 바랐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자, 예수를 배반하는 것처럼, 민요섭을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기독교에서의 회심 내지 회개는 합리적 설명을 구하지 않는 특성이 다소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로가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기적적인 체험을 통해서 회심을 하지요. 좀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남녀간의 사랑도 무언가 설명을 해버리고 나면 사랑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는 것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이유가 있어서 사랑한다면 그 이유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대상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이지요. 가령 예뻐서 사랑한다면 그것은 예쁘다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조공주라는 동화에서 공주에게 청혼하는 왕자에게 공주가 청혼의 이유를 물으니, 왕자가 예뻐서라고 대답했다가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물질 만으로는 만족되지 않는 것 곧 기독교적 사랑의 초월성에 대한 작가의 신앙 같은 것을 표현하는 소설이 '사람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의 아하스페르츠 편을 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하스페르츠는 결론부분에서 결정타를 맞고 쓰러지고 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요컨대, 70~80년대 군사독재체제하에서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지만, 이문열의 정치적 입장 같은 것을 고려해볼 때 단순하게 그런 쪽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은 DBDIC.COM에서 dmagic 회원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dmagic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