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에 앞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나름대로 그럴싸한 이유를 대자면

지금, 내 자리에서 딸노릇하랴, 학생노릇하랴, 선생님노릇하랴...

'바빠 죽겠는데 내가 사라지면 되겠어?'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여행 에세이를 읽고자 결심한 것은,

나로서도 굉장히 의아한 일이었고, 특별한 일이었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학기 말이 다가오면서 시험과 과제의 늪에 빠져있음과 동시에

'방학 때 뭐하지? 방학 때 어디가지?'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요즘,

내 나름대로 '건전한 일탈'을 하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책을 읽자' 였기 때문이다.

 

'30세 아들과 60세 어머니의 여행기'라는 점도 신선한데

그걸 '둘이 합쳐 계란 세 판'이라 표현해내는 재치라니,

처음부터 이 문구에 마음이 꽂혀 이 책을 읽고 싶어졌던 것이다.

 

과연, 기대대로 두 사람은 중국, 베트남에서부터 조금은 생소한 브루나이, 스리랑카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며 스스로 '여행기피자(?)' 임을 자청하던 나에게도 배낭여행의 큰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세계 곳곳의 여행지와 함께 그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에피소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이를 전달하는 태원준 씨의 재치있는 문장들로 인해

비로소 나도 '여행가기'를 방학계획에 넣음으로서 조금은 대학생다운(?) 방학계획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음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사족이지만 '용문석굴은 중국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이다', '용문석굴은 중국의 대표적인 ... ' 을 무한반복해 외우기에 급급했던 다소 불량한 사학도인 나로서는

곳곳의 유적지를 찾아가며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줘서 감사했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 '대단한' 여행기의 주인공이 30세 아들과 60세 어머니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60세 어머니의 환갑기념 선물로 내민 것이 세계여행상품권이라니,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선물을 드릴 수 있었던 두 남매에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 누구나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에게

'엄마 ! 내가 나중에 커서 세계일주 시켜줄게 !' 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내 공부 하기에도 바쁘다고 심지어 나조차도 여행에는 관심도 없던 상황인데...

여러모로 반성할 점이 한 두개가 아니구나...)

 

그런 마음에서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는 더더욱 그러하지만,

유독 책에 실린 원준씨의 어머니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또 두 모자의 위태위태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히 찡한 감동이 느껴지곤 한다.

 

어머니를 위해 기꺼이 배낭을 짊어지고 보호자를 자처하며 여행을 결심한 태원준 씨도,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여행'이라는 제안을 멋지게 해내신 태원준 씨의 어머니도,

 

꽉꽉 찬 여행 일정 속에서 때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두 사람의 모습은 급기야 나로 하여금 질투날 정도로 부러움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나도 우리 엄마랑 꼭 같이 여행가야지' 하는 역시나 대학생다운(?) 다짐을 하나 더 세우도록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가볍게 시작한 내 일탈이 어느새 새로운 다짐들로 꽉꽉 채워진 채 끝나다니

이 거창한 계획들을 언제쯤 실행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어머니에게 이런 멋진 여행을 선물해줘서, 그 덕에 나에게도 좋은 생각들을 가져다줘서, 여행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해줘서, 오랜만에 참 '고마운'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번 방학에라도 가까운 곳으로 꼭 여행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