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황경신 작가의 에세이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제목 그대로 타인을 통해 본 글들을 모아 책을 펴 내었다. 저자의 타인은 바로 그림이다. 이인 화가의 그림을 보고 삶에 대한 에세이를 써 내려간 저자는 잔잔하면서도 삶에 대한 깊이와 인생의 서로간의 대화를 엿듣듯 떨림을 이야기한다.

 

이 책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의 주제는 소통이다.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쌓인 한줄기 빛과 어둠의 관한 속내음이다. 그 향기는 바람을 타고 그림을 통해 전해진다. 따라서 글을 읽는 이의 내면의 성향에 따라 다른 답과 질문들이 주어진다. 읽는이의 마음 또한 작가의 글을 타고 그림속에 감추어진 개인의 내면을 해석하여 밖으로 표출된다.

 

이 책속에 담겨진 황경신 작가의 글들은 가벼운듯 하지만 여운이 남는 에세이다. 누구나 어떤 사물을 통해 기억되는 장면들과 순간들이 지나가고, 그 기억들이 현재 자신의 상태와 처지에 따라 해석되어져 지워버리거나 풀어헤치면서 성숙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경험한다. 책은 그와 같은 능력을 제공해 준다.

 

저자의 그 전 책 생각이 나서가 50만 독자들이 읽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은 어떤 감정의 느낌이 그림과 글, 어떤 사물을 통해 투과된 삶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뭉쳐져 자신의 세계안에 들어와 드러내는 순간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이인 화가의 그림을 묵상하듯 떠오르는 글자들이 저자의 감정과 생각들속에서 어우러지고 조합되어 써 내려간 그녀의 아름다운 글들은 에세이 한편을 읽을 때마다 그 문들을 열어제끼는 순간 이어지는 구조들이 나를 맞이한다.

 

"창문을 잡고 있는 여자의 손 위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여자는 화분들을 집어넣은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문 하나를 닫으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나이는 지났다. 그래도 어떤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옮겨가야 할 때가 있다. 옮길 운, 목숨 명, 여자는 상자를 옮긴다. 상자처럼 무거운 목숨을 옮긴다." -80p

 

삶은 하나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존재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같은 것이다. 개인만 존재하면 이야기는 상상속에 머문다. 언제까지 상상으로만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모두를 집어넣어보자. 그것은 이야기속에서의 자기반성과 타인의 영혼안에 들어가 그 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이며, 그런 이야기들이 쌓여 인생이 되는 것이다. 저자의 글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제는 읽는 이의 이야기가 된다. 또 하나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되어 인생이 된다. 빗물을 타고 흘러 흘러 누군가의 마음을 적시게 되고 누군가 그 빗물을 일부러 말라버리게 만들어버리지 않는 이상 그 운명의 시간들은 또 누군가의 감정에 빙의가 되어 진다.

 

화가와 작가가 만나 그려지는 모습들은 이 책속에 71가지의 나무줄기가 되어 줄기차게 뻗어 있다. 그 줄기에서 떨어지는 빗물과 열매들은 그대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