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을 할 때는 조금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했는데,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라 한시간만에 읽었다. 요즘 책을 하루에 2권씩 읽는데, 이러다보면 다 섞여버릴까봐 한권씩 정리한다.
  정리가 되기 보다 오히려 mix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이런 노력이라도 기울여야지.

  따냐의 그리고 이반의 이야기.
  고종에서 노서아 가비를 올리는 따냐는 역관의 딸이다. 
 
  21p. 커피란다. 한자로 가비다加比茶라고 하지. 더할 가. 견줄 비. 차 다
           이 향과 이 빛깔로 상상하는 맛이 혹시 아니면 어쩌지…….
　　   두려웠던 탓이다. 내게 커피는 딸 수 없는 밤 하늘의 별과도 같았다.

  따냐의 아버지는 수행 역관이 되었지만 나라물품을 손에 댄 혐의로 효수된 역관의 딸이었다.
  이반은 관아 노비였다. 노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반의 가족은 청나라로 떠났다. 청나라에서 여동생과 어머니는 산채로 불태워졌고, 아버지도 청나라 상인 둘을 죽이고 이내 돌아가셨다.   

  둘은 사기꾼이었고, 러시아에서 숲을 팔다가 만났다. 

  52p. 운우지락雲雨之樂, 무산지몽巫山之夢, 동침, 섹스…….
　　   또 많은 단어들이 몸과 몸이 부딪쳐 피워내는 사랑의 기쁨을 가리킨다.

  둘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이게 너무 아쉬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까지 본의아니게 사기를 치게 되는 사기꾼. 사기를 치지 않는데도 사기를 치고 있는 아이러니. 사기라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120p. 진짜 공주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세치혀로 공주님 단 세글자만 뱉으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칭찬보다 더 값싸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누구나 알지만 나같은 사람은 마음에 없는 거짓을 내뱉는 것이 어렵다. 
  물론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쉬워지는 것 같다.

  120p-121p. 한 굽이를 지나면 또 다른 굽이가 오고, 그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린다. 단숨에 돌파할 생각은 버려라. 삶도 사랑도 사기치는 짓까지도 언제나 첩첩疊疊하다.

  이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들의 삶도 사랑도 사기꾼노릇도 첩첩하다.
  
  며칠전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라는 영화를 봤다. 팩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는데, 그 이야기가 끝나고 '노서아 가비'가 시작될 것 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김탁환'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그의 상상력은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것이 아니라 non-fiction이라고 믿을 수도 있을만큼 현실적이다.
  책에서 '노서아 가비, 즉 러시안 커피'라는 구절이 자주 등장해서 살짝 불편해 지기도 했지만, 매력적인 스토리를 생각하자면 감수할 수 있는 겨자씨같은 불편함이었다.

  어쨌거나 아버지에게 안나라고 불렸던 '따냐', 내 세례명이 '안나'라서 왠지 미묘한 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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