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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프로게이머라는 이름을 가져온 바로 그 게임이다. 이 게임이 정착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나는 궁금했다. 하나의 게임을 그토록 오래하면 서로의 패턴이 다 읽힐텐데 이제는 재미가 없지 않을까? 그러나 이 전설적인 게임은 아직도 성황리에 진행중이다. 맞다. 과거의 패턴을 그대로 사용하는 자들은 모두 역사의 뒤 안길로 물러가고 게임마다 새로운 전략과 전술로 판을 주도하며 상대방을 자신의 룰로 끌어들이는 그들이 바로 늘 승리자가 된다.

이것이 게임 체인저다

게임을 앞서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는 회사. 이제 이런 회사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갈수록 파이는 세분화되고 있고, 경쟁사들의 기술도 날이 갈수록 진화되며 소비자들의 요구도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기업은 과거에 했던 고전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 속의 위대한 회사 P&G가 그러했다. 1세기 동안 누려온 영화 속에서 헤엄치다 자신의 발목에 커다란 돌덩이가 달린지도 모른채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해성같이 등장한 자가 있었으니 바로 신임 CEO A.G. 래플리다. 그는 패배감에 빠져있는 회사에 혁신을 통해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는 게임을 바꾸는 고객 중심의 혁신의 8가지 요소를 내세우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고객 중심이라는 말이다. 래플리는 ’소비자가 보스다’라는 원칙을 다시 세웠다. 사실 많은 기업들도 고객중심을 외치지만 실제로 혁신 프로세스에 중심에 놓는 기업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이 올바른 방향-소비자의 욕구 충족과 기업의 실질적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정한 고객중심이 필수적이다. 물론 이것을 하기 위해서 처음에 사원들에게 올바른 목적을 설정하고, 드높은 목표세우기, 엄선된 전략 추려내기 등의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분위기만으로도 일단 시작은 성공이다.

P&G는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갔다. 단순히 시장조사를 위한 시장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살아보기’, ’고객과 함께 쇼핑하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소비자의 니즈와 또 숨겨진 니즈를 알아본 것이다. 이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실제 생활에서 얻은 아이디어들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P&G의 생활용품이다. 책상이 아닌 고객의 살아 숨쉬는 공간에서의 관찰과 연구는 바로 기업의 실적과 연결됨을 증명한 것이다.

버릴 것과 경쟁할 곳을 아는 것은 기업의 에너지를 아끼는 일이다. 우선은 어디에서 경쟁할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보통 기업들이 혁신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놀랄만한 기술의 개발과 무분별한 M&A가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개발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다거나 회사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M&A는 오히려 회사의 독이 된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금호그룹의 대우건설인수 후 매각과 효성의 하이닉스 인수의향은 덩치만 키울려는 우리 기업의 폐단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P&G는 그런 것들을 정확한 분석을 통해 알아내고 성장하는 핵심 비즈니스들에 집중해서 시장을 선도해 나갔다. 한마디로 자신이 잘하는 구역을 더 잘해서 뺏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도록 해줘야지. 당연한 이야기다. 혁신을 위한 조직을 어떻게 안착할 것인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혁신을 위해서는 서로 공유해야할 정보도 많고 모든 조직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미 공룡처럼 거대해진 조직, 무한경쟁의 분위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마냥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P&G는 CIF(Corporate Innovation Fund, 기업혁신펀드)나 NBD(New Business Development, 신사업개발팀)라는 조직을 통해서 혁신을 지원해 나갔다. 확실하게 물적, 정신적 지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더 열어 젖히기로 했다. 혁신을 지원하는 조직만으로는 안된다. 더욱 더 개방된 마인드와 조직이 필요하다. 필요하면 적과의 동침도 허락하는 이 조직. P&G는 혁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소비자를 개발에 참여 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남들이 꺼려하는 괴짜 발명가에서 경쟁사와의 공동 연구까지 P&G의 아이디어를 향한 열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P&G의 C&D(Connect and Develop)다. 새로운 아이디어라면 세상 어느 곳과도 누구와도 손 잡을 수 있는 열린 마음 이것이 P&G 아이디어의 마르지 않는 샘인 것이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을 위한 문화를 만들지 않는다면 혁신을 흉내내는 것 뿐, 실제 회사의 이익과 연결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혁신문화는 회사의 일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폐쇄적이고 경쟁적 문화에서 개방적이고 공유하는 문화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혁신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다. 거대한 공룡기업의 관료체제로는 이 문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혁신리더들 밑에 또 다른 혁신 리더들이 세워져야 하고 그 밑의 역시 혁신 리더들이 키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 조직이 유기적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혁신은 팀 스포츠이다. 서로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것의 최종 목적지는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클레이 스트리트는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각 분야의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아침에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서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그림 그리고 자유분방하게 토론하는 이곳은 P&G아이디어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상사도 없고 제어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핵심 과제만 있을 뿐이다. 모두 다 다르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한 곳에 모인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업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처음엔 자기 목소리만 내던 이들도 나중에는 서로를 경청하면서 모두 머리를 맞대게 된다. P&G는 이것을 적극지원하여 회사의 이익을 끌어낸다.

지금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업 P&G는 그래서 당분간 대항할 자가 없을 것이 뻔하다. 이것은 완전히 이기는 게임이다. 소비자의 욕구, 시장의 상황을 시시각각 현장에서 분석하고 대처하고 개발하는데 어떻게 따라 잡을 수 있겠는가! 책 한권으로 혁신에 대해서 썼지만 사실 어떤 기업이 혁신의 문화를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혁신이 그저 돈을 아끼고 사람 몇사람 자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P&G는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P&G는 혁신문화를 만드는데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어차피 기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혁신을 통해 신바람나게 일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세상을 좀 더 이롭게 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그 기업은 잘 안될 이유가 없다. 또한 기업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혁신 조직을 이끌 그런 리더들이 있다면 그 조직은 필승이다. 어때 이런 곳이라면 한번 일해보고 싶지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