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리아 특급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마이너리그 행 신세가 되었고 점차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잊혀졌다. 마이너(minor)의 뜻은 크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형용사다. 반면 메이저(major)는 크고 중요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이너라는 말은 2류를 의미하며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고,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임꺽정을 마이너리그라 못 박으면서도 그들의 향연을 말한다. 향연이란, 말 그대로 즐거운 잔치가 아닌가? 마이너와 향연, 그리고 메이저라는 대립 속에서 우린 어떤 조화를 찾을 수 있을까. 잘못 보면 마이너로써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타협안을 제시한다고 느껴질 수다. 하지만 작가는 정말 향연을 말한다. 우리가 마이너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삶을 깨우쳐 주고 있다. 삶에 대한 7가지 분야를 조목조목 설정하여, 메이저를 꿈꾸며 현대를 사는 우리들과 마이너를 지향하며 살았던 그들을 비교한다. 이제 그 7가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경제 분야를 통한 비교로 그들의 삶을 고찰한다. 당시 청석골은 이주민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였다. 물론 그들은 주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온 마이너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서 없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계급을 갖는 공동체였다. 공동체의 지도자는 거느리는 자가 아닌, 앞장서는 자였다. 싸울 때는 가장 앞에 서고, 도주할 때는 가장 나중에 서며, 힘든 일을 담당하는 자였다. -여기의 싸움은 곧 그들이 하는 경제 활동의 일환- 그렇기 때문에 무식하고 말을 잘 못하며 비전이 없어도 지도자들은 공동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지도자들과는 참 다르다. 아랫사람을 거느리려고만 하고, 자신 밖에 모르는 모습들. 시장원리에 의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존경과 지지를 받지는 못 한다. 물론 당시 사회에도 주류층은 오늘날과 같았을 것이다. 있는 자들은 원래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청석골에 모인 사람들은 추방자가 아닌 자유자였다. 퇴출된 마이너가 아니라 스스로 메이저를 등지고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낡은 것에서 벗어나 새것을 창안하고, 그 속에서 만족을 얻으며 살아간 모습을 보며 누가 누굴 불쌍히 여겨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한 때 우리나라의 높은 학구열에 세계가 주목했다. 하지만 지금은 광신되어 버린 그 학구열 때문에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는 잊었고, 그저 위로 오르기 위해 배운다. 그에 반해 임꺽정에게 있어 배움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노는 것이었다. 왜 배우느냐는 질문에 “그냥 배워둔다”고 말하는 그를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시험을 위해 배우고, 금메달만을 위해 연습하는 인생이야말로 얼마나 불쌍하고 초라한가! 그것을 이루지 못 할 때 무너지는 모습이나, 이루고 나서의 허무함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정한 어떤 것만을 위한 배움은 그것만을 이룰 뿐 인생을 바꿀 수 없다. 반면 임꺽정의 배움은 곧 노는 것이었고, 그를 통해 천민이지만 자연스레 고수가 되어 청석골을 주름잡을 수 있었고, 한계를 모르고 계속 배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배움의 방법 또한 문제시 된다. 배운 다는 것은 자기로부터 떠나 존재와 세계를 탐구하는 것인데, 요즘은 그렇지 못 한 것 같다. 대학만을 목표로 하는 진학은 물론이고, 얼마 전 대학생의 수강신청까지 엄마가 짜준다는 기사를 봤을 때, 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집을 떠나 청석골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장소가 아닌 마음의 문제다. 부모는 물론이고, 날 지배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으로부터 떠나야 새로움과 참된 것을 배울 수 있다.

  세 번째로, 현대인의 우정관이 지적된다. 오늘날 쿨(cool)하다는 말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원래 의미에서 퇴색되어 가벼움을 지향하고 있다. 수다 떨고, 쇼핑하고, 음주가무를 즐기기 위해 친구를 필요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현대인의 고독을 외친다. 서로 믿지 못해 진정한 우정을 나누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석골의 우정은 조금 달랐다. 그곳엔 좋은 사람만 있던 것이 아니라 나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정이 꽃폈다. 우정이란 좋은 사람 사이에서만 꽃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사실 그런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리라는 말의 의미도 몰랐지만 살면서 깨우쳤다. 목숨같이 아끼고 믿고 인생을 나누는 그들의 우정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을 위한 우정이었던 것이다.

  사랑에 관해서도 현대와 다른데, 소위 밀고 당기기라고 하는 현대의 연애와 다르게 그들에겐 중간단계나 확인 절차 따위는 없다. 영화 ‘마법에 걸린 사랑’에서처럼 단 하루 만에 사랑에 빠지고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좋은 일인까? 소위 ‘원나잇 스텐드’라는 것도 지향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성(sex)은 그들의 목적이 아닌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룻밤 인연이라해도 책임을 지고 함께 살았던 것이다. 오늘날은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냥 가볍게 즐기려고만 한다. 또는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러 저리 재고 또 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은 아니다. 10년을 산 부부도 서로를 알 수 없다고 하는데, 결국 관계란 신뢰와 책임의 문제이지, 이 사람이 어떤지 관찰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섯 번째로 언급되는 당시 여성상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집 안에서 살림만 하는 현모양처가 아니었다. 노동을 함에 있어 남자 혼자 할 수 없고 협동해야 하는 체계였으므로 경제적으로도 남녀는 동등한 지위에 있었다. 또한 거느리는 식솔이 많고, 살림을 여성이 도맡아 하므로 항상 위풍당당할 수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남성 이상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물론 사대부 집안 여성은 다를 수 있겠지만- 하지만 오늘 날은 다르다. 고립된 관계와 핵가족화로 인해 여성의 가정 역할은 살림살이 정도로 한정된다. 그것에 힘도 실리지 않을뿐더러 자긍심도 없고, 결국 남편 연봉이나 자식 성적에 집착하게 되어버린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서 평등이 가까워 오고 있다고들 한데, 그래봤자 평등이고 가정의 삭막함은 더해갈 뿐이다. 과거의 넓은 인간관계와 그것을 아우르는 여성들의 지위. 현대를 사는 여성이라면 남자들을 따라가는 것 보다 옛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 더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야를 조금 넓혀, 당시의 사상과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를 비교해 볼 때,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인간의 욕망이 반영되기에 과정과 결과는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기묘사화로 인해 천여명의 유생들이 시위를 하기 위해 서울에 몰려들었다. 당시 서울인구가 20만임을 감안한다면 무려 5만명의 대학생이 시위를 하러 나온 것과 같은 일이다. 그들을 막기 위해??날의 촛불 시위와 똑같다. 결국 문정왕후 사후, 보수파인 훈구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기득권을 잡아 소위 말하는 사대부의 나라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는 왕도정치가 잘 이루어진 태평정국이었나? 아니다. 결국 권력을 잡은 사림파는 분열하고 싸우고 권력에 집착하게 된다. 나름의 이념을 내세운다 해도 결국 정치의 목적은 힘이다. 권력을 잡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는데, 오늘의 정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이런 권력의 소용돌이를 떠나 청석골로 들어가버린 임꺽정 패거리가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석골도 공동체이기에 정치가 필요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가 그들의 조직 구성이다. 그들은 지도자를 뽑음에 있어 선거나 세습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추대에 의해서만 선출했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특권은 무엇일까? 강탈한 물건을 나눠주고, 용맹함을 과시할 수 있는 특권이다. 황당할 수 있겠지만 존경과 명예를 얻기 위해 그들은 지도자가 된다. 오늘날의 지배권은 말 그대로 지배하는 힘이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작가는 오히려 전제군주제와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그저 법만 많을 뿐이지, 조선시대와 다를 것이 없다. 청석골의 정치구조는 민주주의라 할 수 없지만, 오늘날 민주주의가 할 수 없는 구성원 다수의 행복을 지향했다.

  결국 그들은 행복했다. 비교해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불행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암담한 현실인가? 그렇지 않다!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임꺽정과 청석골은 만족하고 행복했지만, 그것은 또한 그들의 한계였다. 그들 자신이 택한 마이너의 삶이지만 출신의 한계 때문에 그들은 매이저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 환경을 인정하고 만족하고 적응한 것.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쉽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우린 노력에 따라 마이너도 될 수 있고 매이저도 될 수 있다. 가능성 자체가 없었던 그 시대와는 다르다. 오늘날의 가능성과 지난 날 그들의 마인드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면 우린 청석골 이상의 아름다운 향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