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가 카를 추크마이어는 하이델베르크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들과 반신들, 예언자들과 어리석은 사람들, 호색가들, 술꾼들과 성애자들, 도취자들과 소요자들이 편력했다. 그리고 요정들, 매춘부들과 정결한 미혼 여성들도 있었다."

이는 하이델베르크가 무질서하거나 윤리적으로 타락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이델베르크는 특정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다양한 삶의 양식과 가치관 및 세계관이 공존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다름의 미학이다. 다시 말해 나와 다른 것들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공존했던 곳이었다.

 

철학자의 길이 유명해진 것은 괴테, 헤겔, 막스 베버, 칼 야스퍼스, 에른스트 블로흐 등 수많은 문인과 철학자 또는 사상가가 산책했던 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길을 산책하며 사색에 잠기거나 지인들과 토론을 하며 정신적 교류를 나누었다. ... 그러나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은 그보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에게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 옛날에는 대학생과 철학자라는 단어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이는 모든 학생이 전공인 신학, 법학, 의학을 시작하기 전에 교양에 해당하는 철학을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독일과 같이 부유한 나라에서 고작 한 학기 학비 500유로(우리돈으로 75만원 쯤)를 놓고 대학생들이 시위를 한다. 그러나 독일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것은 배가 불러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학비의 액수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보는 철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교육은 원하는 사람이라면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혜택을 받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 원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대학에 갈 수 있는 자격을 따진다면 그것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일정한 정신적 능력 단 하나다.

 

한국의 기독교는 많은 경우 신자들에게 체화되거나 내면화되지 않고 그들의 표피에 머무는 외면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이는 일요일에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가는 것과 술, 담배 안 한다는 것 외에는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입증된다. 독일에서는 기독교가 비록 외면적으로는 쇠퇴하고 있지만 장구한 세월 독일인들 속에 체화되고 내면화되어 여전히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상과 대조를 이룬다. 한국인들이 굳이 유교를 신봉한다고 말하지 않고 공자와 맹자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속속들이 유교적인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여행 소개서도 역사나 문화 소개서도 아니다.

저자는 하이델베르크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를 통해서

한국의 문화를 비춰본다.

 

빽빽하게 몰려있는 아파트, 물질만능주의,

1등주의, 최고주의, 마지막엔 간단히 잘못된 교회의 모습 등

일그러진 한국의 문화를 조명한다.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운 경관을 담은 사진이 많고

책 내용도 아주 괜찮다.

저자는 막스베버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인맥이 아닌 실력으로 교수가 된다고 해서

믿고 봤는데 실망하지 않았다.

 

비싸서 아무한테나 하긴 그렇지만

정말 좋은 친구에게라면 선물하고 싶은 그런 책.

 

 

"정신의 공화국, 하이델베르크"

김덕영 지음, 신인문사, 2010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