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이야. 하루아침에 이별을 통보하고, 또 통보 받기도 하지. 우리는 간혹 헤어지는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지기도 해. 다모클레스의 칼이 언제 내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르는데 내 모든 걸 상대에게 걸 수는 없어. 나는 내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믿고 내 인생을 설계하고 싶지 않아. 감정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확실한 것이니까. 당신은 감정이란 믿을만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방금 옆을 지나치는 여자의 치맛자락에, 그녀의 매혹적인 미소 한 번에 당장 흔들릴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의 감정이야. 내가 음악을 하는 건 왠지 알아? 음악이 내 인생을 버리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야. 책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나는 책을 사랑하지. 평생 사랑하는 사람들, 난 그런 사람들을 본 적이 없어.

 

내가 솔직히 말해볼까요? 지금까지 살면서 당신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남자를 만난 건 처음이에요.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조차 몰랐어요. 정열이 존경과 유머, 따뜻함과 공존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당신은 나한테 책 읽는 기쁨을 가르쳐준 유일한 사람이에요.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유일한 사람이고, 당신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하든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당신은 내 다리만 섹시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 말솜씨도 섹시하다고 봐주는 유일한 남자였어요. 어떻게 한번 같이 자볼까 궁리하는 인간들과는 달리 나라는 사람의 여러 가지 면을 봐주었어요. 그런데 바보처럼 그런 걸 모르고.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랑 안 어울려서 가급적 안 쓰는 표현인데, 정말 사랑스럽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성공한 작가인 주인공은 애인에게 버림받고 우울하 날을 보낸다.

운명이라 믿었던 여인과의 이별로

글을 못 쓰게 되었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도 잃고 방황한다.

그러던 중 신기하게도 자기 책의 등장인물이 나타난다.

그 '종이여자'는 그가 책을 다시 써야 자기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며

계약을 제시한다. 자신이 전 여친을 돌아오게 해주겠노라고.

그렇게 둘은 그녀가 있는 멕시코 휴양지의 어느 호텔로 향한다.

 

이 과정을 그린 내용인데, 사실 읽으면서 결과가 어느 정도 뻔했다.

누구나 상상력이란 게 있으니까,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책이나 영화도 많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예기치 못한 반전을 거쳐 일어나고

난 아주 기분 좋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약간 힌트를 주자면,

보통 책이 액자식 구성(현실과 가상을 오가는)을 취하는데

이 책은 3중 액자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소설책이라면 교훈을 주든지 눈물을 쏙 빼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깔끔한 영화 한편 본 것처럼

아름다운 봄날을 맞이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된다.

악역도 없고 진부한 오해로 엮이는 사건도 없지만

예쁘고 잔잔하면서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괜히 유명한 작가가 아닌가 보다.

그리고 번역도 잘 해서 글이 술술 넘어가니 한번 꼭 읽어 보길!

 

 

"종이 여자"

G. Musso 지음, 밝은 세상, 2010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