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에 의해 제기된 기계론적 세상.

사물은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일 뿐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의 힘이나 역동성이 없다는 거지.

물리학에서 말하는 것 처럼..

 

이에 반해 라이프니츠는 사물 자체에 힘(에너지, 기)이 있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힘을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이 라이프니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왜 하필 라이프니츠인가?

 

"우선 우리는 라이프니츠에게서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려는 끝없는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의 현대는 물론 라이프니츠의 당대겠죠. 자신의 시대와 전통을 조화시키는 것, 그것이 라이프니츠의 과제였습니다. 그러면 라이프니츠의 당대가 어떤 시대였는가? 바로 우리 시대와 비슷한 시대였습니다. 중세 천년을 지배했던, 더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2천 년을 지배해 온 헬레니즘-히브리즘적 세계관이 붕괴한 시대였죠. 그러면서 기계론적 세계관이 등장합니다. 수천 년의 전통 문화가 몰락하고 모든 것이 근대화된 지금 우리의 시대와 일면 상통하는 시대였습니다."

 

모든 사물은 주름(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접힘과 펼쳐짐'이라는 제목도 이 맥락에서 나오는 건데,

우리는 주름, 즉 잠재적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주름접힌 존재들이 모여서 세상을 이루는데,

중요한 건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더해진 것이 세상이란 말이 아니라,

세상(전체)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개체인 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알아도 설명을 못 하면 모르는 거니까ㅡㅜ)

그냥 본문을 인용하는 걸로 때워야겠다.

 

"세계는 복수적이라는 것, 세계는 살아 있으며 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계는 무한한 누층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는 기학적 사유에로 그대로 흡수 될 것입니다."

 

이제 저자는 라이프니츠의 사유를 동양의 역(易)에 연계시키다.

많이 들어는 봤을 텐데, 역이란 뭔가?

'점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시간이 가면서 '자연철학'이 되고

나중엔 '윤리적 의미'까지 부여 받은 것이라고나 할까?

 

내게 있어 이 책의 가장 뜨거운 부분은 마지막 9장 대아(大我)다.

사유를 통해 삶에서 적용할 부분들을 제시하는데,

깨달음으로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 철학에 비해

실제적 이야기를 해주기에 나같은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차원을 넘어설 수 있는 씨앗을 분명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될 수 있는, 성불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죠. 동정심,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정, 사랑... 이런 것들이죠. 그러나 이 씨앗만 가지고는 도덕적 인간이 되기 힘듭니다. 동정심은 자칫 자기 과시로 변질될 수 있고, 깡패나 장사꾼, 정치가들 사이의 의리는 사회의 독이 될 수 있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기적 욕망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감정적 씨앗이 이성의 수준으로 발아해야 도덕이 완성되는 겁니다."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숟가락만 얹도록 차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먹고 맛 있는 걸 알아야, 고기도 잡으려고 할테니까.

 

이정우 교수는 강의를 엮은 책으로 만들 곤 하는데

강의하는 말투로 쓰여있어서 읽기가 좋다.

 

비록 지금은 이 책을 잘 소화해서 남에게 전달해 줄 수 없지만,

은연 중에 체화되어 내 사상에 스며들었을테니

어떤 식으로든 나중에 발현될거라고 믿고 싶다;;

 

 

"접힘과 펼쳐짐: 라이프니츠, 현대과학, 易"

이정우 지음, 거름, 2000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