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을 처음 읽는 것인지, 아니면, 전에 읽어 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책을 읽어 나갔지만, 책 속에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개똥벌레 - P166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은 기숙사의 이야기, 어째서 이야기의 메인 메뉴인 개똥벌레보다 기숙사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 지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만은 어디서 읽어 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디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걸작선에는 약 20여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나의 경우에는 앞선 페이지를 차지한 이야기들이 뒤에 소개되는 이야기들 보다 더 좋았다. 특히 중국행 화물선의 '두번째 중국인 이야기'가 좋았다.

이야기들에서는 약간 오래된 먼지의 느낌이 났다. 낡은 옷장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먼지라고 하면 지저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느낌과는 사뭇다르다. 잠시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 그리고 함께 피어오르는 오래된 냄새 마치 오랜만에 햇볕을 본 눈처럼 익숙해지는데 잠시의 시간이 필요한 그런 느낌이다. 책의 마지막 이야기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마치 이처럼 일기장에 적혀 있는 일기들 중에서 몇몇을 간추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나는 여느 때처럼 - 즉, 언제나 일요일 오후면 그렇듯이 - 부엌의 식탁 앞에 앉아서 괜찮은 음악을 들으면서 일주일분의 일기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메모해 뒀다가, 일요일에  그것들을 제대로 된 문장으로 정리하곤 한다. - p308-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은 마치 오래 전에 찍은 사진첩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보듯, 어느새 마음 속 어딘가가 살살 간지럽다. 마치, 겨울 내내 땅속에 숨어있던 새싹이 지표면 위로 머리를 내밀기 위해 대지를 간지럽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