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굴곡진 삶이 나의 가슴 속으로 막막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점례는 일제 말기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일본 주재소 주임의 말에 따라야 했던 17 어린 소녀가 일본인에게 어쩔수 없이 자신을 내주며 원치 않지만 아들을 낳게 되고 해방이 임박해지자 주재소 주임 야마다는 점례와 아들만을 남겨두고 권총만 들고 야밤도주하고 어쩔수 없이 다시 친정으로 들어가지만 어린 딸을 생각한 어머니와 큰이모에 의해 큰이모 집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자신에게 눈을 주는 남자 박항구에게 처음으로 떨리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큰이모의 적극적인 권유로 박항구와 결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아이를 친정집에 두고 온 점례는 남편이 자신의 신체를 보고서 혹시라도 의심을 할까봐 걱정하지만 박항구의 어머니의 덕분으로 더없이 친절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한 남편을 갖게 된다. 아이가 생겨 낳으니 딸이지만 남편은 너무나 좋아하는데 다음에는 아들을 생각하지만 다시 딸을 낳게 된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사람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지고 결국에는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직함까지 달게 되는데....

 

점례는 자신의 나이가 27살에 세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각각 아빠가 다른 세 아이들... 일본인 야마다의 아이인 태순이는 다른 외모의 남동생 동익이를 어릴적부터 때리고 못 살게 군다. 점례는 태순이의 일기를 보면서 태순이의 아픔을 알게 되지만 자신으로서는 어쩔수 없어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자식들 눈치만 보며 지낸다.

 

예전 6.25 전후 시대의 드라마를 보면 이런 어머님들이 꼭 나온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어쩔수 없는 운명을 처하게 되는 여인들.. 우리는 과연 이 여자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웃을수 있는가? 너무나 가슴 아픈 점례의 삶을 들여다보며 참 인생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하는 마음에 안쓰러움이 먼저 가슴에 스며든다.

 

점례의 3남매 역시도 자신들을 놀리는 친구들과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맘 편한 적이 없었을거라 짐작한다. 미군의 외모를 닮은 남동생 동익이를 보면서 태순이가 겪었을 고통은 어떠할지.. 항상 태순이한테 맞고 터지며 여기에 자신의 친구와 이웃들의 시선을 감내해야하는 동익이가 유일한 탈출구로 삼은 산이란 존재는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오빠와 남동생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입장보다 3남매를 홀로 키운 엄마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세연이를 보면서 그녀 역시도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았다.

 

소설속에 나오는 점례를 통해서 일제 말기와 6.25 전후의 시대 속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지켜온 엄마를 만났다. 그녀가 마지막에 자신의 인생의 덧없음을 느껴 하려는 행동에서 자꾸만 마음이 짠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조정래 작가님 한강을 읽으며 두 형제에게 느꼈던 감동이 오늘 37년만의 장편소설로 재 탄생한 ’황토’로 만났다. 오늘밤에는 꿈 속에서 꼭 점례를 만날거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