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에 대해서는 조금의 상식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허균의 누이로 짧은 생을 살다간 비운의 여류시인... '난설헌'을 통해 허난설헌의 삶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안쓰러우며 마음이 아팠다. 당사자가 좋아서 하는 혼인이 아니라 가문과 가문의 필요에 의해서 결혼하던 시대에 열다섯살의 꽃다운 소녀 초희는 결혼과 함께 험난한 삶을 살게 된다.

매운 시집살이 이야기야 흔하지만 유달리 투기와 질투, 여기에 삐틀어진 마음까지 가지고 있는 시어머니 김씨의 모진 말과 행동을 참아내며 이름 없는 여인 그미라고 불리우며 살아간다. 시어머니보다 못한 그미의 남편은 자격지심까지 가지고 있어 그미를 함부로 대하며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여인들을 곁에 둔다.

남편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어머니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그미.. 어머니 역시 아버지가 여인들을 가까이 둘 때마다 바느질에 매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했던 어머니의 안쓰러운 삶이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과 큰오빠의 귀향.. 그미는 든든한 버팀목이 사라짐에 마음이 아프고 겨우 허락하에 간 외할머니 댁에서 결혼 전 그미를 흠모하던 사람과 마주치게 되는데...

여자들은 살다보면 남편이 밉고 시댁이 보기 싫어도 자식을 보고 산다는 말을 흔히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인데 그미에게는 어머니로서의 행복함과 사랑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처지다. 제대로 만져 보지도 못한 딸과 아들을 먼저 보낸 그미는 더 이상 삶을 이어갈 명분도 이유도 상실했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좋은 시기에 살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요즘이라고 고부간의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여인들처럼 하루하루가 힘든 삶을 산다면 제 명은 고사하고 하루에도 열두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저자 최문희씨에 의해서 만난 허날설헌은 참으로 고운 여성이다. 책을 읽다가 여자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나고 속상하고 아픔 마음이 들지만 모질고 힘든 시집살이 중에서도 자신을 바르게 지키려고 붓을 잡는 그녀의 모습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뛰어난 여성의 삶은 오히려 더 고달프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연상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펼치지도 못하고 아까운 생을 마감한 허난설헌.. 먹먹한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기는 이름이 될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