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추적하는 그녀의 행적

책 선물이라는 게 그렇다. 굳이 나만을 위해 새로 사서 주었든, 자신이 읽다 재미있다며

추천해준 것이든, 준 사람의 지문과 함께 그의 감정도 실려서 전이된다.

특히 그녀가 감수성 넘치는 책쟁이인 데다가, 군데군데 밑줄을 치거나 얇은

포스트잇이라도 붙여놓았다면, 그때부터 그 책은 나 혼자 읽는 게 아니라

그녀와 함께, 그녀를 뒤따라, 그녀의 감성적 행적을 좇아 읽는 작업으로 변한다.

네다섯 개쯤 붙은 얇은 포스트잇은 정말 '그녀다운' 곳에 정확히 붙어 있었고,

그중 2개는 내 정서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여서 개인적 메모에 추가되기도 했다.

그래서, 선입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예민하고 가늘가늘한 감수성이 지긋지긋하여

놓아버렸던 일본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역자후기까지 읽고 난 지금, CSI처럼 그녀의 행적을 

얇고 반투명한 푸른색 포스트잇을 따라 끈질기게 추적하고 나니, 

특정 단편이 와닿아서가 아니라, 특정 문구가 강렬해서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읽은 이 기분이 좋아서 씨익 웃으며 책장을 덮었다.

	시모다 씨는 늘 그래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그걸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알아내도록 해요.
페이지 : 95

	전화를 발명한 벨은 '전화가 울린다. 당신은 사라진다'는 말로 전화를 표현했다고 한다. 전화는 소멸의 미디어다. 전화는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을 순간적으로 어디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버린다.
페이지 : 136

	내 평소 버릇이 그렇다. 상대보다는 심각해지지 않으려 한다. 늘 헤어질 생각을 하면서 남자를 만난다. 그렇게 하면 결정적으로 상처 입는 일 없이 벗어날 수 있다. 계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서른 살이 넘어 실연하면 그 여파가 크다. 자신은 자기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젊었을 때처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편을 들어주지는 않으니까.
페이지 : 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