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함, 외면하고 싶은 도덕, 말하고 싶지 않은 윤리, 생각만 해도 지끈거리는 

역사적 사실. 이 모든 요소들이 범벅이 되어 있지만, 그놈의 속도감과 흥미 때문에 

책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짜증을 내고 미간에 주름을 팍팍 지면서도 출퇴근 길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간의 주름을 만든 책이 

이 책만은 아니지만, 이 책은 미간의 주름, 나이의 무거움을 부담스럽지 않고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는 몇 안 되는 책이었다. 이는 단지 연상, 나이 많은 여인이 

아름다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은 아니다. 

어쨌든 절절하고 끈끈한 사랑 이야기에 도취되어, 원래는 마주치자마자 

깜짝 놀라게 되고 외면하게 되고 회피하게 마련인 도덕과 윤리를, 

어느새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앉아 깊은 고민은 아닐지라도,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인상이라도 쓰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 책과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핑계로 더 이상 절절함이나 끈끈한 감정에 

휘말리고 싶지 않고, 개인, 개성의 존중이라는 방패로 도덕이나 윤리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요즘, 영화화된 베스트셀러,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라는 가면을 쓴, 사실은 어느 책 못지않게 깊이 있는 책에 

내 자신이 휘말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습도 높은 장마철, 우울한 주변의 사건들, 나이듦이 주는 무거운 현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얼마 전까지, 하필 이 책을 들고다닐 때

벌어졌던 우울함과 대인기피증, 현실도피의 욕구가 마지막 페이지와 함께 

쏙 숨어 버렸다.

이 역시 책 읽어주는 남자의 힘일까?

	자신이 아직 살아보지 못했거나 앞으로 다가올 나이를 알아맞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페이지 : 18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페이지 : 43

	만약에 우리 두 사람의 삶이 많은 하인들과 하녀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서로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면서 꾸려나가야 하는 농가에서의 삶이었다면, 우리의 삶은 성취와 성공을 일구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시외의 한 신축 건물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와 우리의 딸 율리아와 사법관 시보인 게르트루트와 나의 일이 전부였다.
페이지 :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