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침묵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소설가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치 컬럼니스트를 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고 ‘눈먼 자들의 도시’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0년 지병으로 별세하였다고 하니 이 책 ‘물의 침묵’은 주제 사라마구가 남긴 유일한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 물의 침묵은

제목에서는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표지 그림에서는 훈데르트 바서의 ‘spiral tree’와 노은님의 ‘나비와 함께’를

책의 내용에서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킵니다.

 

노인과 바다에서도 낚시로 엄청나게 큰 다랑어를 힘겹게 잡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손의 허무함만이 있습니다. 책의 제목에는 다랑어라든지 다랑어를 먹은 상어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그저 노인과 바다라는 이름만 붙어있지요.

 

이 책에도 감정이 굉장히 유사하게 이어집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잡겠다는 희망으로 소년은 낚시 도구를 챙겨서 강으로 갑니다. 물고기가 드디어 걸려들었지만, 물고기는 강하게 줄을 잡아당기더니 낚싯바늘, 낚싯줄, 찌와 추까지 모두를 가져가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낚싯대를 준비하여 그 자리로 갔지만, 물고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저 물은 말없이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지요.  이 책의 제목에도 소년의 분노의 대상이자 좌절의 원인이 되었던 물고기는 나타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다 가라앉혀 품고 있는 물이 제목이 됩니다.

 

시도와 과정이 있었고 결과물이 얻지 못한 주인공 (노인이든 소년이든)과 그 모든 것을 알고 품고 있는 물 (바다든 강이든)이 있는 두 노벨상 수상작가들의 책에서 묘한 동질감을 갖게 됩니다.

 

낚시대를 잃어버리고 물고기는 다시 구경을 못하고 허무하게 물만 바라보다 오는 소년의 하루가 엄청난 실패와 좌절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런 실패와 좌절은 우리 생활에 비일비재하고 이제 더 이상 이런 일들을 실패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 듯 합니다.  생활의 일부이고, 흘러간 과거이니 망각의 대상이지요.

 

노인과 바다에서도 그랬고, 이 책 물의 침묵에서도 그렇고,

놀라운 것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생활의 일부이고 흘러간 감정과 잊혀진 기억을 글로써 우리에게 일깨워 다시 마음속으로 그 감정이 들어오게 한다는 것이지요. 침묵하는 물이 잉크가 되어 책장에 글로써 그림으로 남겨지고, 아울러 가슴에 진하게 침묵의 언어가 새겨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