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었던가? 아닌가?
...에이! 모르겠다. 읽자! 하고 펼쳐든 '야간비행'

리비에르는 아직 몇 분 동안은 조종간에 운명을 맡기고 비행하고 있을 파비앵의 손을 생각했다. 애무를 했던 그 손. 신의 손처럼 어느 가슴에 놓여져서 그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손. 어느 얼굴에 놓여져서 그 얼굴의 표정을 변하게 했던 그 손. 기적을 이루던 그 손을 생각했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이것은 야간비행 101페이지에 있는 말이다.

3년만에 다시 읽게 된 야간비행은 또 한번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시 읽으면서 저자인 생떽쥐베리가 실제 비행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생생한 묘사가 그 때문이었을까)

냉혹한 장교 리비에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조종사 파비앵.
그 둘의 입장을 바꿨다고 해도 그들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오늘 들은 설교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개척하는 사람은 힘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십자가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것을 내려놓을 수 없다."

자신의 십자가를 너무나 무겁지만 낑낑대며 헐떡이며 지고가는 사람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사명감때문일 것이다.
리비에르는 사명감으로 인해 언제 튀어오를지 모르는 인간애와 눈물을 꾹꾹 눌러담았다.
그것은 당장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후일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당장의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냉정함이 좀 더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 농부들은 자기들이 밝힌 등불이 그 검소한 식탁만을 비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치 무인도에서 절망에 빠진 그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서 램프를 흔들고 있기라도 하듯, 그 불빛이 보내는 신호는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이다.
p20

"이제 그만 돌아가시오."
리비에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매몰차게 해고한 것은 이 사람이 아니다. 그의 책임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를 거쳐서 일어났을지 모를 잘못을 잘라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다 만들어지는 것이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것도 보잘것없는 사물일 뿐이며, 그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이 인간을 거쳐서 일어날 때에는 그 인간을 잘라버려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그 가련한 노인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자기가 왜 오랜 기쁨을 빼앗겨야 하냐고? 비행기의 강철에 부딪치는 연장 소리를 그토록 좋아했는데 왜 그 위대한 시적인 인생을 빼앗겨야 하냐고... 그리고는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정말 고단하군' 하고 리비에르는 생각했다. 온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열이 오르고 있었다. 그는 그 서류를 톡톡 치면서 '그 늙은 동료의 얼굴을 좋아했는데...'라고 속으로 말했다.
p59  


2004.06.21 후기

생명을 담보로 한 야간비행의 스릴과 긴장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20세기 초 야간비행을 시작했을 때, 그들의 모험과 주변인물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
조종간을 잡는 순간 '나'를 버리고 '조종사'로서의 임무만을 떠맡게 되는 그들에게 목숨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인간성마저 상실한 듯한 무모한 명령이 있었기에
자신을 버린 용기가 있었기에
모든 일에 새로운 장이 열리고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


<작가 소개>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출생 - 사망 :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 1944년 7월 31일
데뷔 : 1929년 소설 '남방 우편기 Courrier Sud'
수상 : 1939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 (인간의 대지)
경력 : 1926년 우편비행사업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
1926년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 입사

프랑스의 리용에서 출생한 비행가이자 소설가이다. 또한 북서아프리카, 남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이며 야간비행 선구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했고 프랑스 패전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소설가로서 호평을 받았다. 1926년 잡지 '은선'에 중편소설 「비행사」의 발표를 시작으로 「남방우편기」「인간의 대지」「야간비행(페미나상 수상)」1943년 「어느 볼모에게 보내는 편지」「어린왕자」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행동주의 문학은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높은 인간성과 연대책임 등을 주된 테마로 내세워 문학에서의 신선한 영역 창출에 기여했다. 쌩 떽쥐뻬리는 1944년 정찰비행단으로 아홉 번째 출정을 나선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독일군 정찰기에 의해 격추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