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손에 들자마자, 아니 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다짐했다. '하루만에 다 읽으리라'
재미있어서 쏙 빠져들었다기보다는 그냥 뻔할 뻔,자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읽어야 할 책도 많았고, 시간싸움이 시작된 지금 긴 시간을 투자할만큼의 분량도 아니고 그럴만한 책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신문에서도 정치경제란은 정독하게 되지만, 가십란은 후루룩 훑고 지나가게 마련이 아니던가. 결국 재미있는 건 가십란이지만...

여자 나이 스물아홉에 찾아온 이별은, 그 어떤 순간의 이별보다도 몇 배나 더 고통스럽다 ??
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2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스물아홉의 세 여자 이야기이다. 부제로 떡하니 붙어있는 '쇼핑보다 반짝이는 청담동 연애이야기' 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냥 평범한 세 여자가 아닌,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세 여자의 이야기. 잘나가는? 이라고 써놓고 보니 기준이 좀 애매하다. 잘나간다는 기준이 뭐지? ...
뭐 어쨌든, 뉴욕 맨하튼을 배경으로 하는 <섹스앤더시티>를 표방한 서울 청담동을 배경으로 한 <블링블링>.
청담동 사람이라고 하면 기준이 뭘까? 청담동이 주소지로 되어있는 사람? 아니면 청담동으로 매일같이 출근하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퇴근 후에 청담동에 가서 노는 사람? .... 이것도 참 기준이 애매하다.
기준은 뭐 그렇다 치고, 책을 읽으며 묻고 싶었다. 청담동을 지나는 명품을 촥촥 걸친 여인네들에게..
'이 책 보셨어요? 이 책 정말 청담동 연애이야기에요? 청담동에서는 이렇게 연애해요? 아니, 정말 이렇게 살아요?'
내가 다른 삶을 사는건지, 소설 속 그녀들이 다른 삶을 사는건지, 어쩐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삶이어서 공감대 형성이 좀 힘들었지만 대한민국 여자나이 스물아홉,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조금 그녀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난 이제 곧 서른이고 그 사람은 내년이면 서른셋이야. 아무튼 둘 다 결혼적령기라면 적령기고, 늦었다면 늦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였지." 결혼적령기라. 나는 30이라는 숫자를 생각했다. 제길, 이런 기준은 누가 정해 놓은 거야?
페이지 :  89

책을 죽 읽으면서 느낀 건, 환타지와도 같은 그들의 삶에서도 연애, 사랑,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불문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가 흔히 쓰는 말로 '사람, 별거 아니더라'는 거다. 스물아홉, 나는 소설 속 그녀들이 소유한 부와 (소위 잘 나가는) 직업도 갖지 못했고, 사업을 물려받을 예정이며 4개국어를 쓰고 검정색 수트가 멋드러지게 잘 어울리는 남자친구도 없지만 그녀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블링블링'한 나의 스물아홉의 삶이다. 

	어쨌든, 끓어올랐던 사랑이 아닐지라도 '끝!'이란 단어는 언제나 안타까움을 동반한다.
페이지 : 126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아, 뭐라고 답장이 올까? 왠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묵묵부답이었다. 30분이 지났을 때, 나는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 둔 채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러나 나오자마자 집어 든 핸드폰에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설마, 내 핸드폰이 고장 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지만, 내 핸드폰은 아주 멀쩡하다. 그래, 문제는 핸드폰이 아니라 답장이 없는 그, 그리고 그의 행동에 대한 내 마음이다.
페이지 : 132-133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맞는 말이다. 내 인생에 29번째 해가 뜬 그날 아침 이후로, 나는 건우가 언제쯤 프러포즈를 할 것인가 항상 기다렸다. 그의 프러포즈를 남몰래 상상했던 적도 많았다. 그가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하면, 혹시나 그곳에 촛불 이벤트를 해놓은 것은 아닐까. 그가 오랜만에 한강으로 드라이브라도 하러 가자고 하면 '시현아, 나와 결혼해줘' 라는 현수막과 파스텔 톤의 풍선들이 트렁크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가 갑작스레 인형이라도 하나 건네는 날이면, 집에 들어서자마자 인형이 무.엇.인.가.를 말하길 바라며 있는 힘껏 배를 눌러본 적도 있었다.
페이지 :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