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두 가지 의미로서의 혁명

　중국의 문화대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물처럼 단단하게』는 두말할 나위 없이 혁명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단번에 시선을 끄는 제목이나 (개인적으로)일상에서 좀처럼 접해보지 못했던 '중국의 문화대혁명기'라는 독특한 소재 외에, 이 소설을 비슷한 부류의 소설들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시켜주는 건 바로 혁명으로서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복수(複數)의 이미지가 내포된 중의적 단어로 '혁명'을 정의한다. 첫 번째 의미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문화대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내내 이야기를 지배하는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물처럼 단단하게』가 적색과 황색이라는 두 가지 색으로 설명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물처럼 단단하게』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두 가지 색을 쌍두마차 삼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 마차를 모는 기수의 이름은 '가오아이쥔'이다.

「저는 혁명가의 자식입니다. 봉황은 봉황을 낳기 마련이지요.

저는 태생적으로 붉고 어려서부터 혁명에 대한 의지가 강했습니다.

구태 사회에 태어났지만 붉은 깃발 아래에서 그 햇살과 은혜를 받으며 성장했지요.」-p.14

　가오아이쥔은 '혁명가'의 삶을 선택했고 따라서 그는 혁명을 일으킬 의무가 있다. 그가 선택한 혁명은 '젊고 순수한 중화민국의 건설'이라는 대의적 차원의 혁명과 '운명을 바꾸는 사랑'이라는 욕망적 차원의 혁명이다. 마오쩌둥을 위해 투쟁하는 홍위병으로서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 젊은 혁명가들의 삶을 훌륭하게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전통과 신흥의 격돌을 중계했던 전장, 문화대혁명 속에서 작가 옌렌커가 가오아이쥔을 끌고 나온 것은 가오아이쥔이야말로 생생하게 현장을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인 까닭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운동만큼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처라고 한다. 옌렌커는 그 상처를 날것 그대로 꺼내다 내놓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가오아이쥔'이라는 가상의 혁명가를 만들어낸 셈이다.

　만약 이 소설의 주인공이 '가오아이쥔'이 아니라 그의 장인, 혹은 그 또래의 인물이었다면 그는 두 가지 의미로서의 혁명을 추구하는 혁명가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그 시대의 주인공이자 가장 큰 피해자였던 홍위병들을 대변할 수 없는 위치이기도 하다. 젊은 혁명가는 있어도 늙은 혁명가는 없는 까닭이다.

「"아버님, 옛날 밑천은 효력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제 아버님은 혁명의 걸림돌이라는 말입니다.

혁명의 물결이 곧 아버님을 휩쓸어갈 것입니다. 청톈민처럼 과감하게 물러나 권력을 이양하는 게 현명합니다.

어리석게 굴다가 혁명의 물살에 떠내려가지 말고 말입니다."」 -p.102

이름뿐인 혁명

　여기에 얹어 옌렌커는 가오아이쥔을 통해 마오쩌둥에 의한 당시의 '혁명'이 속 없이 부유하는 명분이었다는 점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의 폭로는 혁명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된 범죄들과 악랄한 행위들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오아이쥔은 장인의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그의 딸인 구이즈와 결혼하고, 친구의 아내인 홍메이와 불륜을 저지른다. 직접적인 살인은 아니었지만 구이즈에 대한 무관심은 그의 아내를 대들보 위에 매달려 죽게 했고, 이로 인해 정신이 나간 장인의 자리를 빼앗아버린다. 또한 불륜을 저지르기 위한 수단으로 땅굴을 팠고 불륜 현장을 목격한 친구(홍메이의 남편)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다. 일련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질렀지만 그들의 '혁명'은 이미 그들의 마음 속에서 양심을 죽여버렸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반짝하며 '혁명은 폭력을 떠날 수 없고 때때로 폭력은 가장 효과적인 혁명이다'라는 말을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지하방 구석에 있던 삽을 들고 통로를 따라 청칭둥을 쫓아갔습니다.」 -p.411

　중요한 것은 아이쥔과 홍메이, '젊은 혁명가'들에 의한 피해자들이 모두 문화대혁명의 적, 기성세대라는 점이다. 장인은 늙은 관리였고 그의 딸인 구이즈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동침하는 보수적인 여자였으며, 홍메이의 남편인 청칭둥의 직업은 선생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문화대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아니라 '적'이 필요했던 권력다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싸움으로 이득을 본 건 마오쩌둥과 그의 측근세력뿐, 실제로는 그들을 위해 싸운 홍위병들도, 그들의 공격을 받았던 기성세대도 모두 피해자였다.

제목의 의미

　원형이미지로서의 물은 아주 오랫동안 '고인 물'(경직성)과 '흐르는 물'(시간성)을 상징하는 훌륭한 소재였다. 그러나 특히 이 소설에서 '물'은 문화대혁명기 맹렬한 기세로 기성세대를 공격했던 혁명의 물결의 속성을 상징하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아직까지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단단하게 고여있는 피멍울을 드러내는 은유가 아닌가 싶다.

　마오쩌둥이 죽고 문화대혁명이 소멸한 후에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을 '극좌적 오류'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한때였지만 부르주아 세력을 축출하고 무산계급의 적극적인 계급투쟁으로 진행됐던 문화대혁명은 사실 가장 교과서적인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권력 쟁탈을 위한 운동이기도 했지만, 기득권 사상가들이 수정주의를 추구하면서 점점 사회주의로서의 색을 잃어가던 중국에 대한 인민의 분노이기도 했다.

　오늘날 수정주의의 적극 도입을 통해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국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옌렌커의 대표 소설이 이 책인 점도 수긍이 간다. 소설의 배경은 반 세기 전의 과거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중국은 반 세기 전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이번에는 어떤 물결이 중국을 찾아올지 궁금하다.

중국문학, 옌렌커, 장편소설, 문화대혁명, 마오쩌둥, 홍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