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기관사인 강무훤의 평화롭던 삶은 런웨이에 설 수 없는 걸음걸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전철에 뛰어드는 자살을 시도한 모델 지망생 유리와 마주하면서 한꺼번에 파괴된다.

이혼 위기와 함께 그 사건 이후 무훤의 왼쪽 눈에는 장미가시처럼 연약하고 푸릇한 가시가 돋기 시작해

람부탄처럼 변해 고통스럽다. 세계적 권위를 가졌다는 안과 전문의는 그에게 적출밖에는 해결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당신은 무엇입니까 라는 스팸같은 메일을 받게 된 그는 정하운을 만나게 되고

트러스트미 재단과 유일하게 자신을 치료해줄 늙은 노인 최주결 박사를 만나게 된다.

박사는 그에게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라고 말하지만 그는 더욱 살고 싶고 살아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으려 15일간 사투를 벌이게 되고 결국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의 단절,

자신과의 불화, 자신을 이해하고 믿고 용서하는 의미를 알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 슬프다. 그가 가지고 있는 첫 트라우마는 11살 때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한 것이었고

그 어린 소년을 달래주었던 마리아라는 소녀가 그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는 마리아를 몰라봤었고

누군가의 죽음은 그것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잊혀지지도 않고 쉽게 치유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가 자신을 구해주었던 영웅씨와 결혼하여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지만 삶을 체념해버리고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유리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무훤은 그녀는 죽였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살해한 것은 살아 있는 유리가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유리였다고...자신은 유리를 죽인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순응, 삶에 대한 포기를

처단한 것이라는 말이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꼭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죽여야만 했던 것은 유리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모두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려는 끔찍한 절망이었다는 절규가 먹먹했다.

유리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살해했다는 것. 삶을 죽이려는 살의였다는 것,

그렇지만 그 수단이 죽임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사랑과 상실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