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피해자였으면 아주 자세하게 지나간 일이라도 기억하지만 가해자가 되면 조금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고

했던가? 누구나 기억이 자기 멋대로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상처받은 사람은 자기방어적으로

그 상처를 잊으려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치명적인 잘못이었어도 은근슬쩍 잊어버리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도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맥락인 것 같다. 평범한 주인공 토니는 평범하게 60대를 맞이한다. 그런데

어느날 느닺없이 자신에게 날라온 유언장으로 그 평범함은 깨지고 만다. 유언장은 대학시절

토니가 잠깐 사귀었어던 베로니카의 어머니 포드 부인으로 부터 온 것이다. 유언의 내용은

뜬금없이 500파운드의 현금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기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왜

에이드리언이 나올까? 의아하다.

 

에이드리언은 토니와 친했던 그러나 조금 우상과도 같었던 친구였는데 토니가 헤어진

베로니카와 사귀게되어 약간 묘한 관계를 이루었던 친구이다. 그래도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고 싶다는 편지에 흥쾌히 허락을 해주었는데 얼마후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동맥을 끊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 사건은 이미 기억의 저편이었다.

 

자신은 그 후로도 그럭저럭 평범한 일상을 살았고 에이드리언이나 베로니카는 흐릿하게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었다. 적어도 유언장이 오기전에는 말이다. 그러다 자기앞으로

온 유언장에 자신의 기억이 자기 좋을때로 왜곡되었음을 알게되는 이야기다. 친구가

자살했는데 너무 편히(?) 살지말라는 경고였을까? 유언장을 계기로 알게되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다른 과거를 파헤치는 과정이 흥미롭다. 여러번 읽을 수 있는 책이 흔치않고

이 책이 그 흔치않은 책중에 하나라는데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