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서 의자왕은 음란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등한시하고 간신들에게 놀아나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고는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었던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의자왕 하면

삼천궁녀라는 단어가 세트처럼 당연하게 떠오르는데 의자왕의 궁녀였던 3,000명의 여성들이

사비성이 함락되자 낙화암에 몰려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마치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는 전설이

사실처럼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꼼꼼하게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당시 사비성의 인구가 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또 조선시대에도 궁녀의 수가 최대 600명 정도였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사비성에 3,000명의 궁녀가 있었다는 건 믿기 어렵다 한다. 또한 당시 기록

가운데 삼천궁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당연하게 의자왕하면 삼천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서는 의자왕이 희대의 악인이자 폭군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어쩌면 신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백제군은 수시로 신라에 쳐들어가서 성을 빼앗아 신라를 궁지에 몰아넣었으며

심지어 훗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딸과 사위마저 죽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야가야 할 것이 의자왕을 기록한 입장은 역상에서 승자의 자리를 차지한 신라의 입장이라는 점이다.

삼국시대를 다루는 대표적인 역사서 삼국사기는 바로 경주 김씨, 즉 신라의 후예인 김부식이 저술한

역사서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신라 입장에서 삼국시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삼국사기에서는 의자왕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것이 공식 기록이지만,

그 시대를 기록한 역사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외에는 전무하고, 삼국사기는 온전히 신라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기에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신라의

사관에 의해 왜곡된 의자왕의 일생이 수많은 자료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재탄생했다.

따라서 이 소설속에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를 멸망시킨 왕이 아니라 멸망해 가는 백제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나당연합군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안타까운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픽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명을 쓰고 중국

북망산에 묻혀있는 의자왕을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게 재구성한 작가의 필력에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