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책을 손에 들고 한참을 제목으로 정해진 듯한 한 마디의 말을 되뇄다.

<너는 모른다>라고 읽히는 이 한마디의 말은, 그저 단 한마디의 말일 뿐이었지만 되뇔수록 가슴 저 깊은 곳을 아프고 외롭게 만들었다. 기억도 나지 않은 언젠가, 내가 누군가를 향해 무심코 내뱉어 상처 냈던 말인듯하여 아팠고, 기억나는 언젠가, 내가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상처 입었던 말인 것 같아 외로웠다. 그리고 책장을 펼치기 전 나는 궁금해졌다. <너는 모른다>라는 짧은 한마디의 분명한 의미가, 그저 이 말의 끝에 점 하나를 찍어 마침표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개의 점을 찍어 말 줄임표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기대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내 스스로 그 분명한 의미를 알게 되리라는 기대를……

모두가 혼자…

<너는 모른다>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재혼한 아버지의 아들과 딸, 그리고 새어머니,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또 한 명의 딸이 만들고 있는 가족에 관한, 하지만 가족이라는 말로 통용되는 보통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그래서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들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밀스런 생계수단을 이어가는 아버지, 남편의 비밀을 알고 있으나 침범하지 안은 채로 그 자신도 또 하나의 비밀을 안고 있는 새어머니,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홀로 가족들과 떨어져 매 순간 불안과 공포를 끌어안은 채 자신을 방치하는 큰 딸 은성, 그 자신도 안정되지 못한 채 어느 곳에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사회와 가족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소속될 곳을 찾지 못하는 혜성, 그리고 이들의 모든 비밀과 불안, 공포가 한곳으로 모여 만들어진 것 처럼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안은 채 모두에게서 문을 걸어 잠근 아이 유지. 책 속의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한데 섞이게 할 수 없는 모두가 철저하게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마치 사회라는 거대한 공통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말의 유대감도 없이 따로따로인 개인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너는 모른다>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감추어진 자신의 본 모습이 어쩌면 가장 진실한 스스로의 모습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더더욱 안으로 숨기려고만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자신이 놓인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혹은 그 현실을 위해 지금의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최선이라 말하는 사람들, 그래서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정하고 스스로를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하나로 묶여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가족 안에 각자의 외로움과 고독이 결집된 단 하나의 존재, 유지가 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아이, 은성과 혜성의 동생이기도 한 유지, 하지만 유지는 아버지와 닮지 않았고, 한국인이 아닌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이이기도 하다. 은성과 혜성에게도 아버지의 딸이자 자신들의 동생이지만, 친어머니의 딸은 아닌, 그래서 반쪽만 같은 핏줄인 반쪽의 동생이기도 하다. 유지는 그래서 그 가족에게 유일한 연결의 열쇠이자, 가족들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의 결집체이기도 하다. 가족들은 유지를 바라보며 자신들이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유만을 상기하고, 점점 멀어져 간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는 모른다. 나의 이야기를…

하나의 가족이지만 모두가 혼자였던 이 가족에게 어느 날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유지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런 단서를 남기지 않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 아무것도 공유할 수 없는 가족들이었기에 유지의 실종을 두고도 그 무엇도 공유할 수 없는 가족은 아이의 실종의 원인마저도 공동의 문제가 아닌 자신만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고, 문제의 원인마저도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아버지는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의 생계수단이 아이를 유괴로 몰아간 것으로 생각하고, 새어머니는 가족을 두고 잠시 자신만의 비밀을 위해 대만으로 떠났던 외도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은성은 아버지를 향해 쏟아내었던 원망과 반항의 과거에서 유지의 실종의 원인을 찾으려 하고, 혜성은 한집에서 살며 서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한다. 단절된 가족의 관계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서로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만을 한다. 아버지가 유지를 찾기 위해 고용한 사립탐정인 문영광이라는 이름의 단 한 명의 외부인이 그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서로의 비밀들을 새어나가게 하기 전까지

내 모습을 보여줄 테니, 이해해주겠니?

모든 것의 시작인 가족. <너는 모른다>는 그 가족의 모습을 가장 가족답지 않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는다. 가족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가족의 따스함이 더욱 필요한 이들에게 가족이라는 가장 최후의 피난처마저 빼앗아 가버림으로써 가족이라는 존재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고통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너는 모른다>라는 책의 제목도, 모두가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을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는 이 가족의 모습이 너무도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모든 것을 알아도 부족한 관계인 가족, 그 가족 안에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어쩌면 가족 안에서 누구에게도 나를 털어놓지 못한 채 자신만의 고립된 섬에 갇혀 살았던 시간들이, 이들을 세상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어떤 소속감과 일체감도 없는 부유하는 삶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야기는 이들의 유일한 교집합이자, 그 자체로 각자의 아픔을 상징했던 유지가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이를 찾아나선 후 당하는 실종이라는 사건으로 큰 전환점을 맞고, 변화하게 된다. 바로 그들이 그토록 외면하고자 했던, 그래서 본인의 의지와 타의에 의해 외로운 섬에 떨어졌던 어린 아이의 희생으로 말이다. 그들은 아픔을 겪고, 충분히 고통스러워한 다음, 유지를 되찾았다. 그리고 이제 유지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는 방법을 배울것이다. 유지에게 한 숟가락의 죽을 떠주고, 유지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안에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녹여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말할 것이다. 너는 모른다가 아니라, 이제 나를 보여줄 테니, 나를 이해해달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힘에 겨워 지칠 때 분노한다. 그리고 나를 향해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오는 누군가에게 무심코 그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다.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너는 모른다고……’그리고 더 깊은 외로움과 고립으로 스스로를 내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순간 더욱 간절한 것은 바로 그 누군가의 이해와 관심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그 말을 내던진 자신이 처절하게 느끼게 되곤 한다. 결국 ‘너는 모른다’는 모질었던 한 마디에 숨겨진 진심이란 ‘나를 이해해달라’는 처절한 외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보여주고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러한 이해와 관심의 모습을 보여야 할 곳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가족, 바로 그 단 하나의 시작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