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맨발로 길을 가다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저자 한승원/도서출판 푸르메/2008년 10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꿀떡같다. 굳은 결심으로 펜을 쥐고 자리에 앉아 보지만 두어줄 쓰다가 그만 생각이 엉키고 낱말의 선택이 혼란스러워서 손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펜을 슬그머니 놓는다. ‘나는 글 쓰는 재주가 없나 보다’라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이러한 경험은 무수하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치 돌림병처럼 또다시 펜을 쥐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글을 쓰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성(聖)스러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를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멘톨 같은 환한 알맹이를 깨닫게 되었다. 지렁이가 꿈틀대며 지나간 자국을 남기듯이, 진달래가 봄 산을 분홍으로 물들이듯이, 박새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랑을 나누듯이, 글쓰기는 우주의 행위와 말을 인간의 말로 번역하는 것이다. 작가 한승원의 글쓰기 동력은 고향, 전라남도 장흥의 바닷가, 세세한 자연의 현상들, 늙으신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 이야기,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허영과 들뜨기가 아니라 부처님의 맨발이 뜻하는 고통과 절망의 길을 깨닫는 것이며 자기 가두기이다.

  그는 [해산토굴]에서 “70년 동안 먹을 갈아 구멍 난 벼루가 열 개나 되고 몽당붓이 천 자루나 되었소이다.”라고 추사 김정희가 말했던 것처럼, “5천 권의 책을 읽고 만 장의 글을 써라.” 그러나 “목이 탄 개처럼 해매지 마라.”고 충언하고 있다. 글 쓰는 이의 정신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으로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서 우주의 율동을 깊이 읽어내야 하며,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영혼이 순수하고 진실해야 하고, 글 쓰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기억의 창고에서 살아있는 기억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기억의 표면에서 썩어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발효가 되고 좋은 술이 되어 우리를 취하게 한다. 글쓰기도 이러하다. 또한 위리안치(圍籬安置), 자신을 가두는 일이다. 들떠있는 나를 가두어 가라앉히고 빛을 차단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방법에서도 한승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누가 써도 마찬가지인 글을 쓰지 말라. 내 체험 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써야 한다. 시체를 본 까마귀처럼 덤벼들어서 글감을 찾고 자신만의 창고에 감추어야 한다. 글쓰기의 최고 비법은 혼혈종(混血種)을 만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혼혈종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에 이종(異種)을 교배시켜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품종의 꽃(글)을 피워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무서운 소름이 돋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글쓰기의 치열함과 경건함과 세밀함에 나는 말을 아끼게 되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글방의 전깃불을 끄고 들뜬 나를 가라앉히고 사색하며 우주의 섭리와 교감하려고 영혼의 안테나를 세우고 나에게 보낸 무수한 편지를 해독하려고 끙끙거린다. 이 책은 나에게 부처님의 맨발로 세상과 소통하고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깨닫고 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