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를 펴면 겉표지 안쪽에 남단의 광화문부터 북단의 신무문까지 경복궁 지도를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해설도 광화문을 시작으로 북의 태원전까지 그 역사와 스토리를 말하고, 간간이 해설까지 넣는다. 근정전편을 보자. 경복궁에서 가장 핵심건물로 왕이 정무를 보던 근정전을 보자. 근정전을 받치고 있는 돌로 된 월대는 12지신을 나타내는 서수조각을 보면, 동물들은 대충 무서운 척만 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서수나 절의 사천왕상과는 달리 그리 근엄하지도 않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다. 그중 원숭이는 세상풍파 다 겪은 듯 힘없는 눈빛의 초연한 자세로 앉아있다. 귀신을 쫒으려는 의지가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석공들은 화강암의 투박하고 거칠은 성질을, 조각하는 사람들의 심성으로 따뜻함을 이끌어냈다고 조소학과 출신답게 저자는 해설한다.

 

#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를 느껴보려면 도시의 거리를 걸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도시 서울에서는 시간 내서 천천히 보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서울에서 걸을 수 있게 보존된 곳은 궁궐이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내국인이나 서울에서 가장 고즈녁하게 걷고 여유롭게 둘러볼 만한 곳으로 궁궐을 꼽는다. 서울의 회색빛 네모 박스들 속에서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5대 궁궐이 우리를 콘크리트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고, 현대에서 잠시 과거를 뒤돌아보게 하고, 경쟁과 속도에서 전통과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 그런데 과거에는 시민들이 이 곳을 가도 궁궐이란 건물의 수박을 겉만 핧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모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은 해설사분들이 자원봉사해 주셔서 의지만 있으면 궁궐의 속뜻도 알 수 있으련만,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따라다니는 게 귀찮아서 그런지 생각만큼 그분들을 쫒아 다니는 분들은 많지 않다. 이 책은 궁궐에 대해서는 알고 싶고 여유롭게 즐길 분들을 위해, 정년퇴직하시고 오랫동안 궁궐지키미로 활동해온 저자가 쓴 책이다. 오랫동안 미술교육에 종사해 오셔서 그런지 직접 멋진 그림을 그리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서 경복궁에 대한 3차원 해설서가 준비되었다. 이 책 이후에도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이란 타이틀로 5대궁에 대한 시리즈를 만들 예정인 듯하다. 저자는 역사의 전문가도 아니고, 그림도 사진도 최고전문가는 아니지만, 저자의 정성과 품이 많이 들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준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