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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기독교, 작동이 가능한가?

최근 독자층을 넓혀 나가고 있는 철학계의 한 경향은 현대철학에 정신분석을 통합하는 작업이다. 쟈끄 라깡이 ‘죽은’ 프로이트를 살려내 반향을 일으킨 후로 최근에는 또 그 라깡을 불러내 쾌도난마로 인문학적 범주의 지식의 단면들을 자르며, 후기 자본주의 내지는 디지털 문명과 그 심리기제를 해석하고 종횡무진 진단하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괴물 슬라보이 지젝이 철학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괴물은 라깡의 정신분석이론뿐 아니라 기독교와 마르크스, 특히 레닌, 헤겔까지 불러내어 그것을 융합, 전혀 새로운 사유와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데 이미 그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다 번역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미디어와 그 미디어 문화를 통하여 탈 형상을 꿈꾸는 오늘의 사이버 문명을 교회는 무엇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법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소통에 관한 회의와 반성의 일환으로도 이런 철학계의 동향의 최선두에 있는 지젝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이미 세속의 대학이나 청년들은 이런 철학자들의 글과 이론들을 통하여 교회의 신학보다 더 깊은 해석과 깊이로 현대사회를 이해하고 있고 그 자극적 쾌감을 향유하고 그 자극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데 그들에게 들리는 복음을 위해서도 이런 사유의 노력들이 가치가 없진 않을 것이다. 다음은 최근 번역된 지젝의 책 <죽은 신을 위하여>의 서평내지는 후기이다.

잘 알려진 대로 지젝은 처음부터 기독교와 그 내적 체계를 거꾸로 뒤집고 비틀어 놓는다. 그의 책들에서 이미 반복적으로 탐구되어 온 바와 같이 이를테면 어거스틴의 정통적 자기발견을 통한 신앙에의 입문 같은 것도 그 자체부터 거꾸로 세움으로 출발한다.

“언제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이 괴물이 내게 왔나이까?”(참회록 8-8) 바울 이후의 기독교를 가장 깊게 이해한(정통적인 의미에서) 어거스틴의 ‘유한’에 대한 자기 고백도 지젝에게는 정확히 거꾸로 이해되는 것이다. ‘주여! 피폐한 인간의 실존이 괴물이 아니라 전능하다는 당신 자신이 괴물이었습니다!’

같은 진정한 신에 이르는 정문 앞에서 이와 같이 전통적인 방식을 뒤집어 버리며 지젝이 요구하는 기독교는 어떤 것인가? 먼저 지젝이 말하는 신 자신이 괴물이라는 인식은 신이 무능하고 무력한 실존을 특성적으로 띠고 있다는 무신론적 ‘반역’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지젝에서의 신의 무능은 그 ‘무능’이야말로 가장 신성한 신의 역설적 초월이다. 책의 서두에서 셸링의 질문을 통해 촉발되는 이 부분이야말로 지젝에게서는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지젝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신이 인간이 된다는 것, 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취한다는 것, 신이 영원을 뒤에 남겨 놓고 한시적 영역인 인간의 현실로 내려온다는 것, 이것은 신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 유한한 인간이 보기에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오는 것 같지만 신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올라가는 것이라면? 셸링이 암시한 것처럼, 영원성이 한시성보다 못한 것이라면?”(p.23)

철학이든 신학이든 유한이 무한을 위해 상승하고 무한의 영역을 어떤 방식으로든 침입하고 확보한다는 전통적인 발상으로 하면 유한의 실재계적 실존은 부정되고 극복되어져야 할 황폐한 제약과 고통의 중심이 되지만 유한이 의미론적으로 무한의 영역보다 오히려 더 상위의 격이라는 셸링의 관점을 취한다면 실재계의 괴물 같은 현상은 급직선으로 바로 가장 신성한 실재로 치환이 되지 않는가? 이렇게 뒤집어 지는 지젝의 프리즘으로 하면 영원과 무한만이 신의 영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내적 시간과 사물들도 바로 신적인 영역으로 돌변(?)한다. 아니 진정으로 우리가 책임과 결단으로 바울적 의식의 정열로 투사하고 변개시켜야 할 곳은 우리가 눈을 뜨고 몸을 담고 있는 “으스스한” 실재계 자체가 아닌가?

결국 지젝이 노리는 것은 이와 같은 유물론적 현실이다. 유물론적 실재계의 현실이지만 단순한 사물 그 자체로서의 유물론으로서는 기계론적인 분열과 메마른 과학적 조합으로 끝나고 말 것이므로 기독교 정통의 우주론을 정확하게 뒤집어 그 신성을 실재계로 투사하여 실재계에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가능하게 장착하자는 것이 지젝의 생각인 듯하다. 지젝의 ‘특별한’방식으로 하면 문자 그대로 유물론은 강력한 실재에 대한 정열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더욱 강렬한 신적인 의미를 더빙하여 어느 누구와 싸워도 “승산”이 있는 게임을 할 수가 있다. 지젝의 기독교를 말하는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인 ‘도덕혁명’(Revolution der Sitten) 없이 (테크놀로지) 혁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긴장의 핵심은 이성대 감정의 긴장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대 신앙의 긴장이다. 단, 여기서 신앙은 형식적인 예배로 구체화되는 부인된(disavowed) 신앙이다”(p.10)

그러면 이런 지젝에게 무신론적 반역자로 바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바로 그의 전복되고 비틀어지며 치고 빠지는 코페르니쿠스적인 현란한 역설에 있다. 지젝에게서는 정통적 이해와 무신론적 극단적 이해가 단절되는 두 개의 영역이 아니다. 스스로 말하듯 ‘정오’의 극점에서 정통과 극단의 양면을 더욱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담을 수 있는 역설적 포인트 속에서 그 두 극점은 양가성을 띤다. 그 양가성의 역설안에서 지젝의 유물론적 해석은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이해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반면의 역학관계로 얽히는 것이다. 지젝의 실재계가 그렇게 신성한 의미와 자기대면의 거룩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그 유물론적 현실이 전적으로 신이 절대와 무한의 차원에서 유한과 제한의 시공 안으로 스스로 제한을 가한 신적인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한을 향한 신적인 뜻은 역설적으로 영원을 지향하는 절대보다 더 크다!

유물론적 실재계는 그 자체로는 그냥 하나의 기계적인 사물과 현상일 뿐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 믿음으로 이렇게 역광으로 장착되어 뒤집히면 실재계는 역사적 유물론보다 더욱 더 치열하고 분명한 실재계의 현장이 된다. 그러니까 근본적 믿음이 강렬해 질수록 유물론적 실재는 더욱 눈 부시는 실재가 되고 실재계가 눈 부시는 실재가 될 수록 근본적 믿음은 더욱 강렬해 지는 상호 역학관계로 설정되는 것이다. 이런 역학관계로 지젝은 근본적 기독교를 고집하고 근본적인 파토스로 그것을 말하고 놓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근본적인 면들은 항시 기존의 제도기독교와 공명할 가능성의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젝의 근본적인 태도는 결과적으로는 전혀 근본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의 극단이다. 지젝의 근본성은 근본성 그 자체를 지향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물론적 실재계를 가능하게 하는 배면 엔진의 배경 축으로 설정되는 무대 밑의 장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젝의 근본성은 빨래를 틀어 짜듯이 뒤틀려 실재계를 더욱 눈 부시게 엄밀한 실재계로 만들어놓고는 더 이상 그 근본성을 주장하지 못하고 유한이 무한보다 더 절대가 되는 셸링적 역설의 순간 속에서 철저하게 죽어 버린다.

그 이후의 거룩한 유물론적 현실은 그 유한이 거룩해진 만큼 오직 인간의 책임과 자율로 거듭나 철저한 무신론적 세계관, 문자 그대로 영원과 무한보다도 더 신적인 ,즉 유물론이 된다. 라깡의 실재계로의 초대가 이렇게 비로소 제대로 가능해 지는 것이다. 결국 지젝의 유신론은 역설적으로 이렇게 극단적인 무신론이 되고 그의 무신론은 이렇게 철저하게 정통적인 유신론이 되고 영원과 절대는 실재계의 현실과 다름이 아니게 된다. 대단하고도 대담한 전복적 발상이다.(이런 특유의 상상력이 지젝의 시장성을 만들어 내고 있고 한편, 학문적 경건주의자의 눈에는 그가 시답쟎은 객기나 아웃복서의 일종으로 비쳐지겠지만) 어쨌든 정통과 극단을 아우르는 특유의 방식으로 지젝은 지젝 나름으로 무한과 유한, 절대와 제한적 시공을 종합하고 동일시하고자 했던 헤겔적 노력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렇게 기독교가 거꾸로 세워져서 강렬한 유물론적 실재계를 열어젖히는 사유와 시각으로 하면 확보되는 장점적인 기능성은 무엇인가?

먼저는 궁극적으로 기독교적 내적 질서로 디지털 문명사회의 탈 해체적인 제반 현상과 그 심리기제, 그 모든 것을 담아내고 해석해 낼 수 있는 사유의 틀과 그릇을 누리게(?) 할 수있는 사유의 자극점이다. 전통적인 신학의 시각과 발상으로는 포스트 모던의 혼란과 영지주의적 영성을 촉발시키는 후기 자본주의의 내면과 세계를 그 해석과 사유에서 담아내지 못했는데 지젝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폭발된다면 기독교 이후의 기독교적 세계관도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해 질수도 있다는 가능성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리고 지젝의 유물론적 해석은 정통주의가 취약한 결과를 불러왔던 현세내의 세속적 삶의 차원에 보다 강렬한 목적과 책임의식, 태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면과 내면, 상징계와 실재계, 살아있는 의미를 통합하지 못한 채 유령과 같은 구호와 특정한 교리언어에 갇혀 대안적 삶을 생산해 내지 못하는 현대 기독교를 생각하면 기독교의 이름으로 역사적 유물론 보다 더 강렬한 유물론적 태도로 실재계의 책임적 삶을 촉구하는 지젝의 사유는 그 울림의 자극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전통적인 기독교의 내면의 관점에서는 지젝의 신학에도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우선 인문학적인 기독교 이해에 공히 해당되는 한계이자 문제이지만 지젝에게서도 기독교 내면에서 가장 핵심으로 역사하는 신적 타율에 대한 인식은 전무하다.(초대교회에 현실적인 기능으로 역사되고 있었던 성령까지도 지젝은 신적 “타자가 아니라 신도의 공동체”로 인식한다. 그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생각하면 그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지만) 절대 타자와 그 절대 축의 권위에 걸려 유한이 전복된 지점에서 신적 은총으로 누려지는 신적 타율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지젝처럼 인간을 실재계의 현실로 몰고 가 직선으로 자기 대면적 삶에 대면시키고자 할 때 보편인간은 그 책임과 자유의 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자율과 자기의식을 이겨 낼 뿐만 아니라 충분히 책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지젝의 기독교는 신적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무신론적 휴머니티와는 차원이 좀 다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신론적 자율을 강조한다고 할 때 결국은 무신론의 내면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이 오래된 회의와 질문이 그에게도 상당부분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바울, 어거스틴의 자기파괴적 ‘괴물’(인간의 본성)이 오늘날 외면세계가 디지털 문명으로 격상되었다고 해서 본 회퍼가 말한 것처럼 ‘성인’으로 진화되었을까? 이에 대한 정통 기독교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리고 그 부정성은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말해 주고 있듯 인간을 파괴적으로 멸시하고자 하는 자학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유한의 자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서의 부정이다)

결국 지젝의 기독교적 내면은 정통적인 관점에서는 건조한 자유와 책임으로 나아가게 해 그리스도가 파기하고자 했던 “수고하고 무거운 짐”(마11:28)을 지우는 기독교가 될 수 있는 우려를 촉발시킨다. 한시적이고 연약한 추문으로서의 실재계, 하지만 그 실재계야말로 가장 거룩한 신적 의미가 흥건한 더 높은 차원의 ‘절대’이지만 그 절대를 스스로 해석하고 짊어지는 책임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여전히 그 책임이 스스로를 짓누르는 짐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의 악순환을 돌파하여 유보적이면서도 최선의 정열로 참여하게 하는 자유의 의식으로 자기대면적이요 자기책임적인 ‘살아있는’ 세계로 밀어올리기를 꾀하지만 그 유물론적 자기책임과 자율 역시 신적 타율의 기능성이 빠져 버리면 결국은 법과 초자아간의 깨어진 균형과 긴장에 육박하는 ‘짐’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젝의 기독교도 결국은 도스토옙스키의 딜레마를 반복할 가능성이 커진다. 곧 지젝의 자율과 책임은 (그리스도의 자유는) 무한하게 깨어진 인간에게는 감당하기 무겁고 버거워 부담이 될 정도로 좀 멀게 느껴진다는 대심문관의 딜레마를 이름이다.

“---인간의 자유를 지배하기는커녕 당신(예수)은 인간에게 한층 더 많은 자유를 주고 말았소! 선악을 분별할 때의 자유로운 선택보다는 평안, 그리고 심지어는 죽음이 인간에게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잊었단 말이오? 인간에게 양심의 자유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도 없는 것이오.---당신은 인간의 자유를 지배하기는커녕 그 자유를 배가시켜 인간의 정신적 왕국에 영원히 고통을 안겨 주지 않았소. 당신은 당신에게 현혹되어 포로가 된 인간이 자유의지로 당신을 따르는 자유로운 사랑을 기대했던 거요---.”(<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대심문관’의 이야기 중에서)

전통 기독교의 치유와 사랑은 지젝의 이해와는 달리 바로 이러한 자기억압적인 갭과 벌어진 거리를 좁히고 보다 편하게 줄여 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인문학적 사유보다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자율과 책임을 말한다. 그렇게 해야 그 심리적 시스템에 얹혀서도 기독교가 스스로 자가 발전적으로 작동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 ‘편한’ 자유를 제도권 기독교는 자본주의적 시장원리에 따라 지나치게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말하는 나머지 천박하고 싸구려로 전락시키고 말았지만) "---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 (2007. 9. 20. 뉴스파워 / 김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