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열정에 물꼬를 터주어 내 열정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것, 나는 그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으로서 열정을 간섭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더욱 열정답게 해 주는 아름다운 이성적 질서, 그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이성적 질서, 나는 그것을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8쪽)


삶이 메마르다 못해 팍팍하다. 미래는 암담하고 마음은 방황의 길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유하던 쯔음 이책을 만났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왜 사는지 등을 묻지 않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철학에게 길을 묻는다’라는, 제목 밑에 자그만한 크기로 적힌 그 글귀가 마음을 잡았다. 특히 ’묻지 않을 수 없을 때’라는 그 부분이, 아무라도 붙잡고 묻고 싶은 내 마음을 그대로 쏟아놓은 것 같은 그 부분이 가슴을 쳤다. 그래서 나도 철학에게 그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말  맞춤법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가 그글에 달린 댓글을 통해 우연히 그책의 저자님 블로그를 알게 됐다. 간간이 방문을 하며 알토란 같은 우리말 지식을 무의도식하곤 하는데, 저자이자 편집자이기도 하신 그분의 블로그를 통해 여러 작가님이나 책을 만나기도 했다. 그중 한 분이 김보일 님이었다.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저자님의 딸들에게 종종 책을 선물해주시는 친절한 형님으로 기억되던 그분의 신간 소식도 그곳에서 처음 접했고, 그 인연으로 철학과는 도통 친하지 않은 내가 이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철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현학적 표현, 어려운 수사, 이해하기 힘든 용어로 인한 지루함, 졸림, 어려움 등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아직까지 철학과 그리 친하질 못하다. 그러니 철학을 논하는 책에 손이 가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책을 읽게 된 이유는 앞서 말한 '묻지 않을 수 없을 때'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엇갈렸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나는 지금 어떻게 왜 살고 있는지 어느 질문 하나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책이, 이책에서 말하는 철학이 내게 길을 보여줄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책은 그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했다. 복잡한 마음에 한 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덮은 책이 수북한 요즘, <스무살 철학>은 나를 책 속으로 빨아들이며 무섭게 몰입하게 했다. 이렇게 몰입해서 책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철학을 논하는 책을 말이다. 촌철살인의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건드렸다. 그때마다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여기저기 붙은 포스트잇 덕분에 책의 두께가 한층 도톰해졌다.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한 이야기는 불안, 선택, 고독과 놀이와 친구, 욕망과 행복, 성공,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책들에게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와 독자들에게 풀어놓는다. 담백하면서도 친절하게 요점을 짚어 촌철살인의 문장을 구사한다. 그래서 철학이란 어려운 글이라는 편견은 이책에서는 예외가 된다. 문장 하나하나가 콕콕 박힌다.

이책은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스무살을 대상으로 이야기하지만, 이미 그 날들을 지나온 내게도 여전히 유효했다. 스무살이든 서른살이든 마흔살이든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나이가 들어도 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깊은 사유와 성찰로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내면의 나를 만나고 소통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향하는 삶의 방법을 조금씩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