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더워지는 날씨에 송글송글 맺히는 콧잔등의 땀방울이 여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여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여행이 아닐까. 반복되는 일상의 쳇바퀴를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여름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모두가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짐을 꾸려 발을 내딛는 게 가장 최선이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 우리에겐 여행책이 있으니까! 직접 가보진 못해도 책을 통해 세계 각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접할 수 있고, 나보다 먼저 낯선 그곳을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곳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책으로 하는 여행 또한 맛있다.

크로아티아,하면 가장 먼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떠오른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국가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런 그들이 월드컵 본선 3위를 차지했다. 그것도 처음 출전에 말이다. 98년 월드컵 전까진 존재조차 몰랐던 나라, 크로아티아. 구 유고 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동유럽 연안의 작은 나라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다시 한 번 나의 무관심과 무지가 부끄러워졌던 순간이었다.


여행책을 좋아해서 여행 관련책들을 즐겨 보는 편이지만, 여행지로 크로아티아를 다룬 책은 처음이었다. 간혹 동유럽을 다룬 책들을 보긴 했지만 지나가는 길로라도 크로아티아는 없었다. 그런데 책 한 권에서 온전히 크로아티아만 이야기한다니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 경기에서 흰색과 빨간색이 교차하는 유니폼을 입고 골대를 향하던 그 선수들의 조국 크로아티아는 어떤 나라일까. 어떤 풍경 속에 어떤 향기를 내뿜을까. 낯선 곳을 향하는 두근거림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이나 사람이나 겉보다 그속에 담긴 내용물이 중요한 법. 그러나 겉모습 또한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미인들에게 눈길이 먼저 꽂히듯 책 또한 독특한 제목이나 인상적인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책, 참 예쁘다. 이국적인 풍경들을 총천연 컬러로 담아낸 사진들이 책의 대부분을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풍경을 사진과 일러스트로 만나보는 재미도 있었다. 다만 연속되는 교차 편집에 중복되는 느낌은 아쉬웠지만. 깔끔한 제본과 한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 또한 딱 내 스타일이니 가는 손을 막을 수가 없다.


대기업을 다니다 책에 매료되어 출판사를 차리고는 삶을 책과 여행으로 채우고 있다는 저자는, 사진 솜씨 또한 전문 작가 못지 않아 많은 책들의 사진 작업을 했단다(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엄친아?). 그래서인지 이책의 7할, 아니 8할은 사진의 힘이다. 엽서 풍경 같은 사진들은 물론 크로아티아만의 색을 잘 담아낸 멋진 사진들이 즐비하다. 특히 그들(혹은, 그 또는 그녀)을 크로아티아로 날아가게 만들었다는 한 장의 사진 - 끝없이 이어지는 두브로브니크의 붉은 지붕의 모습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흰색과 파란색의 공존이 그리스 산토리니의 색이라면, 이 붉은 지붕들의 향연은 크로아티아의 색감이었다. 이제 크로아티아,하면 월드컵과 함께 그 붉은 지붕들이 떠오를 듯하다.

주홍빛의 지붕들 못지 않게 인상적인 곳은 플리트 비체 국립공원이었다. 비가 내리면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유우니 소금사막 만큼은 아니지만, 너무 맑아 빠져들고 싶은 호수의 영롱한 빛깔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언젠가는 한 번쯤은 그곳을 꼭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플리트 비체는 천연림으로 둘러싸인 16개의 호수와 92개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비경이란다. 사진 속의 너무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의 앞부분에 있는 두브로브니크와 플리트 비체가 너무 강렬했던 까닭에 뒷부분에 나오는 스플리트와 자그레브는 무난하게 느껴졌다. 분량 자체도 얼마되지 않긴 하지만. 그러나 뒤로 넘어갈수록 사람 냄새는 진해진다. 거리에서 만나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삶과 일상들, 그들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들이 크로아티아의 또다른 면을 보여준다. 사진은 카메라의 렌즈, 글은 작가의 눈이라는 제한된 프레임을 통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즐겁다.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는 글보다는 사진에 무게 중심을 둔 책이다. 여행 에세이보다는 여행 사진책이라 부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분류야 어찌되었든 중요한 건 책이 전하는 느낌이다. 풍성하게 담아내는 크로아티아의 이국적 풍경들은 때론 황홀하게 때론 친근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 든다. 그 풍경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입가엔 웃음이 번지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또한 이책은 지식보다는 감성에 치중한 책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기대하며 책을 집어들었다간 실망하기 딱 좋지만, 낯선 곳의 감성을 맛보기를 바랐다면 꽤나 흡족한 책이다. 책 제목처럼 크로아티아 = 행복,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카메라 렌즈와 작가의 눈을 거쳐 보여지는 크로아티아의 모습은 나른하고 따듯했다. 사진과 글을 통해 그들의 감동이 다시 독자인 내게 와닿는다. 크로아티아에서 느낀 행복들이 책을 통해 곳곳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긴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때가 있다. 아마 이책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국적이지만 친근하고 아름답지만 소박한 모습들이 담긴 사진을 통해 크로아티아를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 행복이번지는곳, 크로아티아, 사진, 가치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