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아질수록, 공교육이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할수록 사교육에 대한 부담이 늘어간다. 입시 제일주의의 대한민국 교육 열풍에 휩쓸리지 않으려해도 공교육만으로는 안심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학교가 끝난 뒤 연이어 몇 개의 학원을 다니느라 어깨가 축 늘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아이는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다짐해보지만, 이것저것 배우며 앞서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혹시 내 아이만 뒤쳐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어쩔 수 없이 사교육 열풍에 동참하게 되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의 현실이다. 아이들은 방과 후 학원에 다니느라 힘들고,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학원비를 대느라 힘들다.

그런 요즘의 세태와는 꽤나 동떨어진, 그래서 더욱 신선한 한 가족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들일 사교육비를 모아서 학원이 아닌 지구촌 을 여행했다는 그들. 집에는 티비가 없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적이 없다. 대신 집에는 책이 있고 아이들의 학원비 대신 모은 돈을 여행경비 삼아 가족이 함께 지구촌 곳곳을 누빈다.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그 꿈같은 일을 직접 실천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배낭여행>를 펴낸 5인 가족이 그들이다.

미술교사인 아빠, 국어교사인 엄마, 맏딸 미루와 초등학교 5학년인 쌍둥이 아들 길로와 바로. 이렇게 5명의 가족이 발칸반도로 떠났다. 작년에 읽었던 3살짜리 아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던 오소희 씨의 여행책들도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온가족이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선다. 물론 아빠와 엄마가 '방학'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지만(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직업이 참 부럽다!), 가족 전체가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난다는 자체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좁디좁은 학원의 책상에 앉아 영어 단어나 수학공식을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직접 몸으로 부딛치며 배우는 살아있는 지식들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세상을 직접 보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게 해주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부모로 둔 세 아이들은 진정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책속에 나오는 각각의 나라들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꼭 하나만 꼽으라면 세르비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국경비자가 무산되어 뜻하지 않게 세르비아로 향하던 가족에게 '왜 세르비아는 여행지에서 뺐나요?'라고 묻던 알렉산드로스의 질문은 세르비아의 불안정한 정세에 안전문제를 떠올렸던 그들 가족 뿐만 아니라 책을 읽던 내게도 뜨끔한 질문이었다. 몇 가지 사실로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그들도 나도 범한 셈이다. 전화위복이라고 알렉산드로스를 만나면서 시작된 세르비아 여행은 그들에게 최고의 기쁨을 선사해주었고, 내게도 역시 내전으로 얼룩졌던 그들에 대한 기억을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책을 통해 아직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 여행에서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책상이란 좁은 가상의 세계가 아닌 아닌 '진짜' 세상에서 진정한 교육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그들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온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속에서 더욱 돈독해지는 가족간의 정은 이 여행의 또다른 선물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의 미래의 가족과 함께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는 상상을.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부디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이룰 수 있길 또 한 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