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박창석의 의도는 명명백백하다.
　
고상高尙과 고가高價의 취미로만 여겨지던, 그리하여 대중의 관심에
서 저만치 멀어져 고립孤立과 고착固着을 반복하던 희대의 미술작품을
만화에 빗대어 좀 더 친근감 있게 표현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은이의 의도와는 별개로, 다분히 만화적 컷 분할의
책 겉 표지를 손끝으로 쓸며 나는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철학을 하던 이가 어느 순간부터 만화를 섭렵하더니 이젠 미술마저
논한단다. 비주류의 대표격인 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전유물로만
치부되던 만화를 통해 세계 유수 경매장의 최고가를 나날이 갱신하는
미술작품을 우리에게 말한단다.

철학, 만화, 그리고 미술. 초야의 딸깍발이가 경망스레 북치고 장구
치며 지엄하신 양반네들의 풍류를 만천하에 읊조리는 꼴이 아니면 대
체 무어란 말인가. 이처럼 얼쯤하며 마뜩찮은 조합이 세상천지에 또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책장이 넘어가고 읽은 글자가 읽어야 할
글자보다 많아질수록 나는 앞서 생각했던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이내
깨달았다.
‘만화가 사랑한 미술’을 통해 지은이는 다리를 건설했다.
고래古來로부터 뭇 세인의 편견과 외면을 독차지한 만화와 미술을
교묘하고도 친절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창작이요, 감히 개
척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단언컨대, 만화와 미술을 이으려는 시도는 기존에도 제법 있어왔다.
그러나 대부분 동격이 아닌, 미술의 포괄적인 면과 다양함 등을 포장
하며 뽐내고자, 만화를 일종의 성스러운 재물로 차용했을 뿐이다.
　
지은이 박창석이 만화와 미술을 이은 다리는 견고하다. 게다가 균등
하다.
그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설명하기 위해 김인의 「그림자 소묘」를
언급했다. 각각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짜임새
가 훌륭함은 두 말할 것도 없고.
흑인 피카소라 불리는 바스키아의 「페가수스」를 보자. 백인우월주
의적 대중문화의 폐해와 현 매스미디어의 복잡성을 암시한 작품을 보
며, 지은이는 유희연의 「위기의 남자」속에 감춰진 정보의 과잉과 미
디어에 따른 인성의 획일화를 따끔하게 꼬집는다.

이는 본디 미술이 지닌 기발하고, 기이하며, 기묘한 이미지를 통해
만화의 무질서하지 않고, 무분별하지 않으며, 무감각적이지 않은 작품
성을 표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독자의 즐거움
이요, 식자識者의 뇌를 더욱 살찌게 한다. 지은이의 유려한 글솜씨와
해박한 지식이 깃든 책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천하일미에 견주어
도 무방할 테니. 실로 유쾌하다.
혹 이것이 ‘만화가 사랑한 미술’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이 새벽
허공에 대고 묻는다.
　

　
표준어의 사전적 의미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나는 내 자신이 교양이 충만하여 무릇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어떠한
가르침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표준
어를 쓴다. 고로 나에게는-비록 최소한이지만-교양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교양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아가, 우리에게
깃든 교양은 물경 얼마나 될까.
　

고흐를 알기로서니 그의 진품을 직접 본 이가 몇이나 될 것이며, 피
카소의 여러 모작을 봤다손 치더라도 그의 살아생전 얼굴을 뇌리에 각
인시킨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한 컷을 그리기 위한 만화가의 노력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별이 나고 지는 몇 억 광년 밖의 일이라면 다행이다.
살았던 시간 혹은 공간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간
희대의 천재화가들에게, 지금도 마감에 쫓기는 이 땅의 만화가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소외와 외면을 대물림 해준 것은 아닐까? 필경 이것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음이라.
　
　그러나 이젠 염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친절한 창석씨’가 있기에.
　그가 ‘만화가 사랑한 미술’을 우리에게 선사했기에.
　
끝으로 지은이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외쳐본다.
　
미술이 지루한 천국이라면, 만화는 재미난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