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일이다.
세상 모든 학문이 인류의 역사를 두고 각자의 위대함에 대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먼저 과학은,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발전시킨데 대한 자신의 눈부신 업적을 피력했다. 나아가 생로병사에 이르는 인체의 신비 또한 과학의 범주가 아니겠냐며 무척 기세등등하다.
이에 질세라 수학이 반격에 나섰다. 과학을 표현하는 방식은 수학 자신이 대부분이요,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과학은 반쪽짜리 글줄에 불과하다. 숫자와는 무관하게 초기 인류는 셈을 이해했고 이것이야말로 과학의 시초이자 본질이니, 무릇 과학의 모든 업적은 마땅히 수학에 전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음악과 미술은, 형태는 없으나 자신들의 존재야말로 태초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유일무이한 산물이라며 여타 학문에 절대 뒤처지지 않음을 강력히 주장했다.
문학은 아직 문자가 발명되지 않은 시기는 논할 수 없는 사정인지라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후로도 여러 학문의 열띤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마지막까지 침묵을 지키던 철학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학문의 잣대로 인간의 삶을 구분하려는가. 너희 모두는 인간의 ‘사고(思考)’에 기생하여 창조되지 않았더냐. 어리석은 피조물들. 나는 인간의 사고 그 자체이니라.”

그러자 철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이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철학의 사전적 의미는 인생, 세계 등 궁극의 근본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그러나 이 한 문장으로 철학을 정의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는 철학이 극히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어서 말과 글로 표현하기 애매하단 의미는 결코 아니다.
몇몇의 예를 따져보자.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주장한 지동설은 단순히 천문을 관측한 실험값이 아닌, 우주와 천체에 대한 진리 탐구의 철학이자, 순수 열망을 반영한 보상이다.
중세 계몽운동은 당대 부패한 왕정에 대한 반기이기 이전에, 인간이 좀 더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사회 본연의 철학사상에서 비롯된다.
고전 역학의 정점에 선 뉴턴의 수많은 과학적, 수학적 업적을 거론하기 위해서도 그의 철학관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철학은 역사, 과학, 종교, 정치 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인류 역사의 토대이고 석축이요, 또한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맨 처음 언급한 이야기는 급조된 창작에 불과하지만, 공공연히 철학을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도로 보는 세계 사상사]에 등장하는 철학의 사조는 참으로 다양하다.
원시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시대상의 사상 변천은 물론, 이를 다시 지역적으로 크게 동과 서로 나누어 각국의 정세에 비추어 설명한 방식은 퍽 그럴싸하다.
여기에는 ‘낯익음의 법칙’이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제자백가, 4대 우상, 순수 이성 비판 등 누구나 한 번쯤 과거 학창시절에 들어봤음직한 이론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공자를 비롯하여 헤겔, 마르크스, 키르케고르 등의 친숙한 이름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다소 무미건조한 지식의 나열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리 받아들이기 버겁지만은 않다.
철학이라는 다소 난해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옛날이야기 접하듯 쉬이 이해가 가능한 셈이다.
덜 생소함은 되레 친숙함에 수렴하지 않던가.
다만, 중국에 특화된 당대의 사상은 꽤 전문적인 분야까지 두루 기술한 반면, 서양의 경우 특정 인물이나 그의 저서, 업적 등과 같이 다소 표면적 사실에만 치중한 점은 못내 아쉽다.
허나 어쩌랴.
이것 역시 저자만의 집필 ‘철학’일 테니.

[아버지. 철학의 다른 이름.]
[철학.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학문의 큰 형태.]
물리학을 단순히 ‘힘’에 관한 학문으로 좁혀본다면, 철학은 이 ‘힘’을 어떻게 써야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찰하는 학문이다.
수학을 숫자와 도형으로 세상을 연산하는 학문이라 생각한다면, 철학은 그렇게 숫자로 일관된 세상이 과거에 어떠했으며, 미래에는 어떤 방향으로 변모할지에 대해 관찰하는 학문이라 볼 수 있다.

철학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작은 변화 하나로 안과 겉의 경계가 불분명해지지만, 다시 말해 겉과 안 모두를 잇는 명쾌한 지침이 되기도 한다.
모든 학문이 각자의 경계는 달라도 서로 긴밀한 유대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비단 숫자나 기호 등의 공동 사용이나 유사 이론의 차용 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라는 물음으로 인하여 학문이 발전했다면, “왜?”라는 물음 자체는 곧 철학을 의미한다.
진리를 찾고자하는 세상 모든 학문.
그리고 이러한 학문을 있게 한 인간 본연의 원전 철학.
학문의 ‘아버지’ 철학은 이렇게나 넓고 깊다.

태초에 철학이 존재했다.
이리하여 세상에 진리가 생겨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