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미겔 루이스 몬타녜스

신대륙 발견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어느 날, 도미니카공화국과 스페인 양국에 나누어 보관되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유골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콜럼버스의 생전 사인이 전부.
이에 도미니카공화국의 문화부장관인 알타그라시아는 경찰 에드윈을 비롯, 스페인에서 파견된 과학수사경찰 올리베르와 팀을 이루어 사건을 수사해 나간다.
셋은 콜럼버스에 관한 고문서의 기록을 좇아 세비야, 마드리드, 그리고 제노바를 경유하는 긴 여정에 돌입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사는 난항을 겪고 여전히 단서는 부족하기만 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군이라 믿었던 이들이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급기야 올리베르와 앙숙인 보물사냥꾼 로널드와도 조우하게 된다.
적도, 아군도 없는 공황 상태의 3인.
과연 그들은 사라진 콜럼버스의 유골을 되찾고, 신대륙의 발견에 얽힌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는 뛰어난 흥행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쉬운 문체와 적은 등장인물로 말미암아 작품의 전반적인 이해가 용이하며, 특유의 빠른 전개는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의 연속으로 몰아넣는다. 아울러 이미 친숙한, 그러나 여전히 신비함이 가득한 예수의 성배를 소재로 삼은 점 또한 이에 일조한다.

[사인]은 제2의 [다빈치 코드]를 모토로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출판사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악담일까?
팩션형 소설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온갖 음모로 점철된 사건과 이를 파헤쳐나가는 주인공의 활약,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인]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범인은 두 나라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콜럼버스의 유골을 훔친다. 그러나 작품 내에서 느끼는 사건의 중대성은 그다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아울러 범행의 목적도 너무 평면적이며, 그저 했다고만 할 뿐,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요소가 전무한 실정이다. 적어도 범인은 범인다워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 일행의 수사는 또 어떤가.
수사를 하러 간 건지 술 마시고 춤추러 간 건지 당최 모를 정도로 태평하기 이를 데 없으며,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도서관이나 방문하고 고문서를 뒤적거리는 일이 전부이다. 이런 게 일국의 문화부장관과 양국의 베테랑 과학수사 경찰로 이루어진 팀이라니. 잘해야 고등학생 수준의 추론과정을 나열할 뿐이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작품의 마무리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굳이 반전을 넣지 않더라도 작품의 결말은 앞서 모든 사건을 하나로 귀결시키는 응집력이 필요할진대, 이건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 그 많은 공과 시간을 들여 수사를 한 것도 모자라,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살아남았더니 정작 해답은 엉뚱한 곳에 있다.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전개인 것이다.

특히나 문제시 되었던 것은 바로 콜럼버스에 대한 저자의 지식이었다.
저자가 작품에 자신의 지식을 내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시기와 양에 대해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콜럼버스에 관한 사실을 작품 전반에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사건의 수사와는 별 상관이 없는 부분이 불쑥 나오기도 하며, 상당량의 실제 지식을 자르고 압축하여 선보이니 이를 독자가 쉽게 납득할 리 만무하다. 그저 자신의 지식을 [사인]을 통해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재미만으로 따진다면야 앞으로 다시는 책장을 열어볼 일이 없을 작품이다.
그러나 ‘지식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나름대로의 가치는 존재한다. 신대륙을 찾아 거친 대양을 일주하는 콜럼버스의 항해기나,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콜럼버스의 미스터리만큼은 분명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일 테니.

콜럼버스의 달걀에 관한 일화에서처럼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40여 년에 걸친 콜럼버스의 노력.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어도 아메리카는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별에 이름을 붙여 하나의 별자리가 완성되듯 콜럼버스의 항해는 아메리카라는 미지의 대륙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비록 이 위대한 제독이 신대륙을 직접 쌓아 올리진 않았으나 그의 죽음을 각오한 항해는 지금도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너무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무한한 호기심과 진취적인 모험.
저자의 작품 전개는 미흡하나 그가 [사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나 단순한 진리는 아니었을까? 여기에는 별 백 개를 주고도 남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