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반가운 - 익숙한 - 이름과 제목에 이끌려 무턱대고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던 책이다. 사실은 아이들 영어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으나, 우리 아이들이 읽기에는 턱없이 어려운 문장들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이들에게 직접 읽힌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문장의 난이도를 크게 신경쓰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테이프를 틀어놓기만 했다. 동물원, 고릴라, 침팬지 등 아는 단어만으로 내용을 유추하던 큰 아이가 동화의 내용이 궁금해질 무렵, 내가 뻣뻣한 발음으로(^^) 읽어 준 후 한문장, 한문장 번역을 해 주었다(잘 모르는 부분은 대충 넘어갔다). 또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고릴라는 초등2학년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은 초등5학년인 큰아이보다는 1학년인 작은 아이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다. 확실히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차이가 있었다.

주인공 한나(영어 발음은 ’해나’로 들린다)는 고릴라를 무척 좋아한다. 고릴라에 대한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텔레비전도 보았지만 진짜 고릴라를 본적은 없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동물원에 가서 진짜 고릴라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항상 바쁘다. 해나가 학교에 가기도 전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일을 하신다. 주말이면 너무나 피곤하다. 해나의 생일전날 밤, 해나는 침대 발치에 고릴라 인형 선물 꾸러미를 발견하지만 ’장난감’인 것에 실망해서 던져버리고 다시 잠이 든다. 그런데 그날 밤 놀랄만한 일이 벌어진다. 고릴라가 점점 커지더니 살아있는 고릴라가 되어 해나를 데리고 동물원에 간 것이다. 해나는 아빠와 하고 싶었던 여러가지 일들을 고릴라와 함께 하게 된다.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와 오랑우탄, 침팬지를 보고, 영화를 보러 가고 잔디밭에서 춤도 춘다. 고릴라가 내일 또 보자(See you tomorrow)고 인사하자 해나는 흥분해서 "Really?"하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남기고 간 고릴라. 다음날 아침, 해나가 눈을 떴을 때 그 고릴라 인형이 해나 옆에 누워있고, 해나는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쏜살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간밤에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얘기하려고! 아빠는 해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고, 해나와 함께 동물원으로 향한다. 해나는 무척 행복해한다.

큰 아이는 해나가 밤에 겪은 일들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인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아침에 고릴라 인형이 해나 옆에 누워 자고 있는 것을 보고 고릴라가 약속 - 내일 만나자 - 을 지켰다고 생각했다. 해나가 밤에 겪은 모든 일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어린 나이에 읽으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초등 고학년도 그림책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 특히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봐야 책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곳곳에 고릴라가 숨어 있다. 전등갓에 고릴라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장난감 고릴라가 살아있는 고릴라가 되었을 때, 같은 전등갓에 있던 고릴라들의 몸짓이 달라졌다. 마치 ’안녕! 만나서 반가워!’라고 말하는 듯이. 해나와 함께 간 극장에서는 ’수퍼맨’이 상영중이었는데, 그 수퍼맨이 고릴라이고, 자유의 여신상 얼굴도 고릴라다. 저 멀리 숲에도 고릴라의 형상이 보인다. 고릴라가 점점 커지는 장면에서 옆에 있던 인형의 표정이 점점 변해가는 것, 장난감 집의 불이 켜지는 것 등은 아이들이 보면서 큰 소리로 웃을 정도였다. 거의 뒷부분쯤 가서, 아빠가 해나에게 케잌과 카드를 주는 장면, 아빠 뒷주머니에 바나나가 꽂혀 있는 것은 간밤의 고릴라가 혹시 아빠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책 크기도 거의 A4사이즈 정도로 그림이 굉장히 좋았다. 영어로 된 고릴라를 먼저 읽고 번역된 고릴라를 구입했는데, 어쩐지 그림의 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영어동화책으로 내용을 알고 난 후 구입한 책이라 작은 아이는 이 책에 반가움을 표했다. 어쨌든 영어동화책은 영어공부라는 목적도 조금 있었으니, 나는 문형이 같은 두 문장을 따로 뽑았다.

          Hannah had never seen a real gorilla.
          Hannah had never been so happy.

문법은 하나도 모르더라도 이 두 문장은 익숙해졌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을 읽기 전에 골랐던 책이었으니, 잠수네식 영어를 조금 배우고 나서는 우리아이들의 실력에 비해 얼마나 무모하게 어려운 책을 골랐는지가 실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번역서보다 그림이 훨씬 좋다는 장점이 있어 소장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줄줄 읽게 되겠지!

gorilla, 앤서니브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