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다가 말았던 경험이 있다. 너무 방대한 분량에 질려서 그런가... 이 책도 사실 굉장히 길고 어려운 책이다. 고백하자면 생물과 통계 관련 얘기가 나올 때 넘어간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역사나 정치, 사회이념 부분은 매우 흥미로워서 꼼꼼히 다 읽었다. 

인간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인식하고, 그 우월성을 정당화한다. 그 이유로는 의식적인 마음, 즉 자의식이 있다는 것과 도구를 제작할 줄 안다, 협력을 한다 등등을 들 수 있겠는데 여기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크고 정교한 사회 제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도 사회를 이루고 살지만 그 사회는 그냥 친밀한 관계에 불과하다. 인간이 구축한 사회 제도는 단지 친밀함에 휘둘리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교함과 크기는 가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근대에 들어서 경제성장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은행의 등장으로 투자가 촉진되었으며, 자본주의는 더욱 발전했다. 예전에는 고정된 파이만을 약속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성장을 통해 더 큰 파이를 약속했고,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게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끝없는 경쟁과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탐욕과 혼돈의 시스템을 신성화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자본주의는 인본주의와의 결합으로 성공을 거둔다. 인본주의란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고, 자유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차지한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인본주의는 세 갈래로 나뉘는데, 자유주의, 사회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나뉘게 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이지 않은가.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아는 역사대로 흘러간다. 1914년까지 승기가 우세했던 자유주의는 쇠퇴의 길에 다다르게 되고, 파시스트와 공산주의가 인기를 얻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냉전에서 승리하면서 자유주의는 21세기 초에까지 선택되어 대부분의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이 되었다.

작가는 또한 이념은 기술에 발을 맞춰야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서도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 발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요새 내가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는 컴퓨터 알고리즘이다. 시대가 변하는 과정을 물흐르듯 집필하였고 그것이 내가 원래 아는 배경지식과 합쳐져서 마치 퍼즐의 조각이 딱딱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인류가 겪었던 역사를 통해 어떤 미래가 올 것인지 대략적으로 예측하면서 우리는 그 미래에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