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 넘게 살아 온 서울이 왠지 낯설어졌다.

1973년 처음 발표되었고, 새롭게 장편소설로 다시 태어난 조정래 작가의 책<비탈진 음지> 때문이었다.

1970년대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그 휘몰아치는 변화 속에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더럽게 얼룩진 도시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깊은 아픔으로 다가온다.

 

서울로 돈벌러간다고 가출한 큰 아들, 병든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 모를 서울로 야반도주한 복천.

구수한 사투리만큼이나 마음씨 좋은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무섭기만하다.

두 아이들과 살아나가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보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다.

우연히 만난 동향인 떡장수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땅콩장사를 해보려 하지만 리어커 채 도난당하는 바람에 밑천까지 탈탈 털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일이 바로 칼갈이다. 무거운 연장통을 끌고 다니며 고단한 생의 무게를 나날이 느끼며 살아가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 복천영감이다. 맞고 있는 신문팔이소년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질 줄 알고, 식모아가씨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남겨주고 싶어 주인이 갈때와는 다른 가격을 받고, 복권팔이 소녀에게도 번번이 복권을 사는 복천영감. 자신에게 친절하던 떡장수 아주머니 일가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고, 식모아가씨가 주인집 삼촌에게 버림받아  술집작부로 전락하는 등 그의 주변사람들 역시 녹록치 않은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복천영감을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더 강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만만치 않은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 즈음 복천영감의 다리 한짝마저 사라져 버렸을 때 그와 그 가족의 슬픔은 서울이라는 유령의 도시가 가져다주는 환상을 여지없이 깨부쉈으리라.

비탈진 음지는 아직도 건재히 우리의 주변에 남아있고 어쩌면 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살아남을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부자들은 어쩔수없는 부자고 가난한 이는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이는..우리에게 복지란 아직도 너무도 멀고 먼 미지의 단어가 아니던가.

사회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가의 글.

당신도 글을 통해 그 시대를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