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 먹자. 

친근한 모 광고의 카피문구처럼 누군가와 밥 한끼를 먹는 일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서로간에 정을 채우는 일임이 분명하다. 누군가와 차를 마시는 것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차이는 명징한 구분이 있는 것으로 밥을 같이 한다는 것에는 우리를 어느정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는 듯하다.

음식과 관련된 누군가와의 특별한 추억은 어쩌면 일생동안 남아 순간순간 떠오르는 환영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싶다.

 

<Go> <W>의 전설적인 에디터라는 저자의 경력과 어울리게 들어도 뭔지모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한한 음식들( 가령 양이나 송아지 다진 내장을 오트밀과 섞어 만든 해기스, 난시앙, 빠오롱 등) 부터 친숙한 라면, 만두, 닭발과 관련한 추억들까지 음식과 관련한 기억들을 풀어놓는다. 찬란한 여자나이 스물일곱에 만난 에스프레소, 친구들과 처음 맛보던 치즈퐁듀의 난감한 맛, 이국땅에서 맡은 아빠의 사리곰탕면의 냄새, 항암치료 후 엄마와 갔었던 냉면집, 시어머니에게 잘보이려고 시작한 닭발만들기...

 

내 인생에 기억에 남는 밥상은 어려서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수제비.

어려서부터 많이 먹어왔기에 요즘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가 되어 버렸건만 가끔 맛보는 그것은 향과 맛의 꼬리를 물고 옛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물론 어떻게 해도 예전같은 맛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쫄깃하게 입안을 가득채운 밀가루떡과 라면스프의 조미료향이 어우러진 추운날 가슴끝까지 따스함을 전해주던 먹거리. 그 흔한 감자 한톨, 조개하나 들어가 있지 않았던 수제비가 그때는 왜 그리도 좋았는지. 네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작은 밥상을 사이에 두고 그 따뜻한 온기는 한 겨울을 녹이고도 남았었다. 가끔 옛날 얘기를 할때면 엄마는 어려서부터 밀가루 음식만 많이 먹여서 속상했다고 눈시울을 붉히시지만 그 때 맛보던 수제비는 어느곳에서 파는 그것들보다 맛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모든 음식들이 그렇게 누군가와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에 마음을 덥혔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친절히 음식 사진이나 간단한 레시피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작은 욕심..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때로는 뭉클하고 거룩하기까지 한 일상의 그 한 조각을 들춰내고 싶었다. 그 추억의 기록이,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세피아 톤으로 안착되는 빛바랜 심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까 점심에 씹어 먹은 깍두기처럼 명징하게 느껴져 누군가하고 밥을 먹고 싶어진다면 좋겠다.- 프롤로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