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을 듯한 환상을 경험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가상의 세계가 가상이 아닌 현실로, 현실의 세계가 현실이 아닌 가상으로,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헷갈리는 경지에 이른다면 그 또한 책이 주는 축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환상문학에 대한 호감은 어쩌면 어린시절 동화가 가져다 준 환상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리라. 물론 이야기의 맛이라면 할머니가 머리 맡에서 들려주시던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가 가장 맛나는 것이긴 하지만..

 

스페인 북부 상상의 마을 '오바바'를 무대로 펼쳐지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 26편을 담은 연작 소설집 <오바바마을이야기>는 스페인을 떠올릴만한 열정적인 새빨간 표지로 먼저 시선을 끈다. 처음 접하게 되는 스페인문학인지라 기대 역시 컸다.

아들의 사랑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대신 편지를 쓰는 아버지 이야기, 뇌속을 파고 들어가는 도마뱀이야기, 맷돼지로 다시 태어난 소년이야기, 죽음의 신을 피해 도망친 하인이야기등등 단편들끼리 이어져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서술의 방법이 독특하다. 물론 몰입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역시 존재한다. 

 <아라비안나이트>,<켄터베리 이야기>,<데카메론>과같이 바스크 구전의 전통을 현대분학으로 재창조한 흥미진진한 문제작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특별한 반전이나 놀라움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몰입에 어려움을 준다. 1,2 부보다는 3부 쪽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분량이 짧아지는지라 좀 더 수월하게 읽기 좋겠다 하겠다.

 

"걱정하지마, 에스테반.

사랑의 통증은 어금니의 통증과 같아.

강렬하지만 절대 심각하지 않거든." p49

환상 속에서 본 소녀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고백한 이후 아버지는 소녀의 역할을 맡으면서 소년과 공감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 사랑의 통증은 강렬하지만 절대 심각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무뎌져가는 사람의 마음이라니.. 나중에 사실을 알게된 소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절대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 것같았던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서의 당혹감이라니.. 

 

 

“당신 말이 맞지만, 기억이란 방심할 수 없는 겁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기억이란, 글쎄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그래요, 그것은 마음처럼 약간 시대에 뒤진 겁니다. 논리라는 것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지요.”
“그렇다면 얼마만큼이나 기억해야 합니까?”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아야 합니다.” p147

기억은 우리의 영혼에 물을 주고 생명을 주지만 이 물이 차고 넘치지 않게 배수록 역시 필요하고 잘못하면 모든게 파괴될 수도 있다는..너무 많은 것을 기억해서 미쳐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무의식적 망각에 대한 고마움과 안심을 느끼게 된다.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스페인 상상의 마을 오바바가 왠지 모르게 궁금해지는 책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