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초의 백화점에 대한 기억은 언제였던가?

이모가 선물해준 눈에 하트를 만들던 공주풍 드레스였을까?

삼촌이 선물했던 새 운동화였을까?

항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선물로만 받던 백화점 물건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즐기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후각을 자극하는 유혹의 향으로 가득 찬 화장품매장을 지나, 저걸 신고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아갈듯한 신발들, 팽팽한 얼굴을 자랑하는 반질반질한 가방들,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상품들을 두고 난 풍요로움보다는 몸을 수그리게 만드는 허기를 느꼈다. 보이는 많은 것들을 내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잘 알려진 사실과 같이 백화점 내부엔 시계도 창도 없다.

동선은 자유롭다.

백화점을 건축 계획할 때 내부공간은 먼저 동선계획부터 시작한다.

고객의 흉부위치에서부터 고객이 가방을 하나 들었을 때

두명이 팔장을 끼고 지나갈 때의 너비와 길이까지 고려해 치수를 계산하는데 그 공식 또한 따로 있다. p22

 

행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쇼핑,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p.90

이러나저러나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맨 마지막까지,

찢어지지 않고 남는 종이는 아아, 역시 영수증들인 것이다. p 336.

 

 

 

 

 

지하 1층부터 8층까지 당신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각 층이 가져다주는 느끼은 어떤 것일까? 백화점에 대한 면밀한 관찰로 시작된 글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백화점 곳곳의 일상을 보여준다. 백화점 사물, 세계, 사람이라는 부제처럼 백화점과 얽힌 이야기들은 사소하면서도 진솔함을 느끼게 만든다.

 

명품매장의 약간의 오만함을 품은 직원과 몇 마디 주고 받을 때면 판매원이 아니라 수 백만원짜리 가방과 대화하는 느낌이라는 왠지모를 공감.

 

조카들의 탄생에 따라 칠층 키즈매장을 찾게 되었다던.. 칠층에 다니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훨씬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독신 여성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작가의 담백한 고백.

 

꼭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게 되는 팔층 리빙 매장.저절로 스위트홈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잉여를 추구하는 것이 비근본적인 행위가 아니라 취향이며 섬세함이 동반되는 영혼의 특별한 고양이라는 인상적인 주장. 

 

조카의 헬로키티사랑을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스누피와 친구들을 떠올리고 생각만해도 심장이 뛰던 그 순간들의 기억들을 더듬게 되는 일에 느껴지는 같은 행복감.

 

나와는 큰 연결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었던 백화점은 생각보다 도처에서 나와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수많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두 그곳과 어렵지 않게 얽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얽힘을 마다할 사람은 얼마나 될지.. 허기지고 허기져 점점 쌓이는 영수증에 눈물을 흘릴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