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글이나 역사와 관련된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제목만 보고도 굉장히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한글’이라는 민족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그 창제과정과 연관된 거대한 음모를 파헤진다는 설정은 한국 독자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거창한 제목이나 책 표지에 소개된 문구에 비하여, 그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작품이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김진명 소설은 학창시절에 너무나도 재미있게 봤던 소설이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획기적인 소재였고,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충분히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그 소설 이후에도 김진명의 작품은 꼭 챙겨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은 그 책과 너무 많이 닮아있는 느낌이다. 당시 김진명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요인을 그대로 재현하려 노력한 듯 하다. 마치 "21세기에 쓰여진 20세기 소설"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특히 강형사의 캐릭터는 다소 황당했다. 소설 초반에 "멘사회원이 뭐에요?" 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다소 어이없는 질문을 해대던 강형사가 나중에 서석중 교수가 남긴 암호를 풀어낸다는 설정도 너무 억지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찾아낸 훈민정음 원류본에 대한 반전(?)이나, 두 주인공의 해피엔딩까지..

훈민정음이 가림토 문자를 토대로 하였다는 주장은 이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과연 서석중 교수가 죽기 전에 했던 연구는 어떤 것이며, 그가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 하며, 이 책을 끝까지 읽었는데.. 시원스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채, 그저 지금은 들추어 낼 때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역사 속에 묻어버리는 마무리.. 허무함, 그 자체였다.

마치 젖은 모래로 멋진 탑을 쌓아올렸으나, 햇빛이 나자 모래가 물기를 잃어버리자 그 탑이 허물어져버리는 것을 본 느낌이었다.

훈민정음 창제과정, 한글의 우수성, 두 주인공의 문화재 답사, 두 주인공의 추리과정과 결말의 반전, 그리고 마지막에 사랑까지..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다가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읽을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이 지니는 시사성은 그 어떤 소설보다 충분하다. 한글의 우수성을 독자들에게 부각시켜 주고, 또 우리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해준다. 또한 강형사와 서교수가 함께 서석중 교수의 암호를 풀기위하여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화재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청개천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번 하기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