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드상을 수상한 저명한 일본인 수학자가 쓴 책이다.

보통 학자의 위인전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이렇게 비범했으니까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지,라는 자조를 불러일으키는 일화가 많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단 한번도 그런 내용이 없다.

 

정말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었구나 싶은 생각만 든다.

단 하나 그의 비범함은 다른 뛰어난 학자들의 반짝이는 재능에 대해 시기하거나 경계하면서 자신을 소모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꾸준히 도전해서 끝을 보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것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얼마나 중요한 재능인지 모른다.

 

흔히들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한다고, 자기 자신이나 자녀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노력만 하면 쉽게 뭔가가 될 것처럼. 하지만 사실은 머리가 나쁜 것보다 노력할 줄 모르는 그것이 훨씬 심각한 문제인거다.

나는 누군가 그런 말을 하면 항상 쌩하게 '그게 그 사람 한계야'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이십대 때에는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는 나는 그걸 못할거야 라는 생각이 있었다.

목표는 높은 곳이어야 하고 번듯한 무언거여야 하니까 '그걸' 원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그걸 그 잘난 사람들과 경쟁해서 어떻게 해내겠어,라는 패배의식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이십대를 지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삼십대의 중반을 넘은 이 상황에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게 뭔지 아직도 확실히 모르겠는, 그래서 내가 커서 뭐가 될지 아직도 궁금한 나는, 이제야 안다, 꾸준히 하는데는 장사가 없다는 걸.

뭔가를 시작하면 좀 오래 하는 나로서는 참 힘이 되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어떤 것을 해내고 해내지 못하고는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얼마나 징하게 노력하느냐에 대한 문제이지 사람이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부를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일평생을 학문과 함께하며 살아온 학자의 답이다.

 

미국, 프랑스 등에서 유학하면서 느낀 '질문'에 대한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참 공감이 간다.

서구인들은 '바보같은 질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내가 질문하면 괜히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진 않을까?' 이런 생각없이 자기가 궁금하면 끝까지 물어댄다. 심지어 책을 읽고 뭔가를 써내라는 숙제를 받아들고서도 '이 책은 무엇에 대한 내용이냐'고 질문을 한단다. 하지만 그렇게 물어대면서 일년, 이년 지나다보면 어느샌가 택도 없는 질문이나 하는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장을 내세울 줄 아는 학자로 거듭난다고...

반대로 동양인은 다 알면서도 '여차저차한 걸 내가 알고 있는데 너도 그거 아니?'라는 측면에서 과시를 위한 질문을 한단다. 이건 특히 인문계열 학자들의 경우가 많이 그렇다. 학회가면 남에게서 배우고 남의 의견을 들을 생각보다는 '니가 하는 그 말은 내가 이러저러한 책에서 이리저리 보고 생각한 건데 그에 대해 나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런 소리만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씰데없는 소리'라는 아빠의 한마디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경험을 어릴 때부터 해와서인지 좋게보면 덕분에 뭔가를 전달해야 할 때 조리있게 선후가 여차저차하고 이리저리해서 요렇다,라는 정리 및 전달을 잘 하는 편이긴 하나 이것이 쓸데없는 소리인가 아닌가에 대한 강력한 자기검열을 가동하다보니 궁금해도 못 물어보는 경우, 많다.

 

특히 선생님에게 질문해야 할 때 어이없게도, '내가 물어보는 건 대답 못할거야. 괜히 선생님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곤란하게 만들지말자', 이러면서 '내가 혼자 알아봐야겠다',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용기를 내어 내가 진짜 궁금한 걸 물어보면 그런 건 교과서나 참고서에 있는 내용이 아니니까(있으면 왜 물어보겠어?!) 이리저리 중언부언하다 그냥 순간을 모면하고 넘어가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사례도 더해졌고...

그런데 이런 태도는 길고 긴 배움의 여정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근데 여전히 회의 시간에 '씰데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질질 늘이는 그런 사람은 싫다. 그분은 욕을 먹어도 배우고 성장하긴 할텐데 여전히 그런 관점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어째 질문의 동양적인 특징도 서양적인 특징도 다 싫어하는 것 같네... 정말 나는 어지간하면 혼자서 알아서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근데 또 어떤 책에 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끝까지 궁리해보는 것도 학자적인 태도로 나쁘지 않음, 이라는 이야기 꼭 있을 것이다!

(막 이래)

 

공부하는 신랑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