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름과 작품 제목을 많이 들어서 안 읽고도 읽은 것 같은 책들이 있다.

소위 고전이라는 것들인데... <세계문학의 숲>시리즈를 한권씩 읽어가면서 그런 책들을 무난히 읽어내고 있다는 점이 책을 읽어서 얻는 것 외의 뿌듯함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헨리 제임스라는 작가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제목은 처음 들어보았다.

게다가 의외로 공포물인 것 같아서 읽기 전엔 살짝 망설였다.

영혼의 평화를 위해 공포물은 안 보는 1인이라 말이지...

 

외국소설은, 한국어로 번역했다 하더라도, 작가의 모국어 고유의 비유가 생경한 한편 무슨 말인지 잘 알겠고 '그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헨리 제임스는 보아하니 꽤 까다로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인 것 같다.

영어 특유의 복문이 많아서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 중간 중간에 한문장씩 끼워넣는 조건들, 그래서 한없이 길어지는 호흡.

1800년대 특유의 점잖을 빼는 듯한 화법은 역시 동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에서 나타나는 어떤 분위기와도 유사하게 느껴진다.

가만, 의도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대의 책은 서로 다른 영역의 작품임에도 그 나름으로 통하는 구석이 있구나 싶어서 그런 깨달음이 또 은근 기쁘다.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가 있는데 결정적으로 일어나야 할 사건이나 동기는 끝까지 서술되지 않고, 유령이 실제로 나타났던 건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으며 그래서 독자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책 속 유령의 외모, 악한 동기, 악한 영향력을 상상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가끔 21세기의 눈으로 보면 여러모로 어설프지만 그 시대에는 이게 진정 센세이셔널 했겠구나 싶은 책을 만날 때면 그분들의 시대엔 새롭기가 참 쉬웠어... 싶은 생각도 들고, 아니야, 어쩌면 전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맨땅에 헤딩하는 게 더 어려웠을 수도 있어... 싶기도 한 양가적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나는 왜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21세기에 태어난 것일까 해가면서 말이다.

 

누군가는 책을 덮고 나서 '지금 장난해?!!'라고 허탈해 할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이 이야기 참 좋았다고 하기도 할 것이다.

회사의 책 많이 읽는 젊은이 하나는 아침에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자기도 이 책 참 좋았다고 했다.

나의 의견? 보류다. 그의 걸작이라는 후기 삼부작을 읽을 때까지 평가를 보류하기로 한다.

 

건진 책 목록

제임스의 걸작이라 평가되는 후기 삼부작

특사들(The Ambassadors)

비둘기의 날개(The Wings of the Dove)

황금 주발(The Golden Bowl)

영국의 저명한 비평가 F.R. 리비스가 헨리 제임스와 함께 영국 소설의 맥을 잇는 작가로 지목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의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