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집에서 발견한 작가중 한명.

예전에 친구가 권해줘서 그의 [습지생태보고서]는 이미 읽었지만 지금 다시 읽는 중.

예수의 생일에 크리스마스라고 외식을 하고 생일에 케익을 먹었던 추억을 가진 한국인이 지금 한국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는, 너무 가난했고 그런 서양문화를 전혀 접하지 못하고 오로지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 세대를 대한민국 원주민이라 부른다.

그가 생각하는 원주민이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이젠 어디서도 볼 수 없고 생활사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존재이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맥락을 같이하는 의미로 대한민국 원주민의 삶.

'소는 누가 키울거야'라고 외치는 개그에나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 아이 낳고 그날 오후에 밭에 나가서 일을 해야했고 자신의 아이를 온전히 안아볼 수도 없없으며 끼니 때마다 10명이 넘는 대가족의 밥을 챙기고 낮에는 밭일을, 밤엔 온 가족이 입을 옷과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며 살아야했던 내 할머니의 삶, 그것은 단지 전근대적인 삶이 아니라 가난한 삶이었다. 다만 그 시대에는 그런 가난이 평범이었던 것이고...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책을 보면 중세 다음 근대, 그 다음 현대 이렇게 마디마디 넘어가지만 현실은 다른 거다. 서로 다른 시대가 비율만 오르내릴 뿐 겹쳐 움직이는 거다. 지금 스무살짜리 중에도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란 친구들이 있다."

작가는 77년생이다. 나보다 어린 나이지만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창생활을 한 이들이 나누는 유행가에 대한 감정, 영화를 본 기억 같은 공통된 기억이 없다. 뭔가를 욕망하는 것조차 사치이고 낯설다. 막내아들을 돌봐주던 누나가 초등학교에 가자 처음엔 누나 학교에 따라다니다가 나중엔 하루치 볶음밥과 함께 잠긴 방안에 홀로 남겨진다. 엄마는 일을 가야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엄마를 찾으며 울던 그 아기가 잠이 덜깬 새벽 시간 가끔 찾아와 다자란 청년을 흐엉흐엉 울게한다는 대목을 비롯하여, 한꼭지 한꼭지가 내 어린시절에 없었으되 그래서 내 창작세계가 한없이 좁고 평범하다 하더라도 바꾸고 싶진 않은 시간들이다.

사람이 참 영물인 것이(혹은 간사한 것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내성이 생겨서 불행과 가난을 오랜 세월 겪다보면 사람이 덤덤해지고 그 타격을 적게 느낀다. 지금은 아이가 코감기로 코만 막혀도 속이 상해 죽겠는데 그 시절엔 아이가 아파도 무엇 하나 해줄수가 없고 아이가 죽어도 오래 슬퍼할 수도 없었다.

신발을 신기 시작한 원숭이는 발바닥이 연해져서 신을 신지 않으면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우화가 떠오른다.

신발을 공짜로 준다는 꾐에 빠져 결국엔 맨발로 걷지 못하게 된 원숭이가 매번 신발을 사 신어야 한다는, 눈 앞의 헛된 이익에 끌려가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우화이지만 나는 삶에서 그런 식으로 두꺼운 굳은살이 박혀 어떤 시련도 덤덤하게 이겨내는 인물이 되기보다는 작은 가시만 박혀도 호들갑을 떨며 빼어내는 평탄한 삶만을 원한다.

그의 가난은 그에게는 아픔이었고 그런 유년시절 끝에 누군가는 비뚤어져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세상에서, 그 시기를 자양분으로 이런 뼈저린 이야기를 자아내는 작가가 대견하고 고맙다.

그의 홈피 http://www.mokwa.net/

그리고 그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고 안온한 생활을 누린다는 얘기를 어느 바람결엔가 들으면 좋겠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었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글을 못 써서 만화가가 되는게 아니다, 글을 잘 쓰는데 그림을 더 잘 그려서 만화가가 되는거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신 그분!

대성하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