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앉아있는 강은엽 선생 등에 두 살 ‘씩씩이’가 올라탔다. 청계산 떠돌이개인 어미에게서 태어나 강 선생이 젖병으로 키운 개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각가 강은엽(78) 선생의 집 현관문 아래쪽에는 ‘개구멍’이 있다. 개가 머리나 몸으로 밀면 앞뒤로 열리는 문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문 역시 개 키높이에 맞춰 낮게 냈다.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이 “개들과 한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집 주인의 부탁에 따라 그렇게 설계했다.

집 내부 바닥재로 거칠거칠한 검정 돌을 쓴 것도 개 때문이다. 반려견이 흙 묻은 발로 집안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고, 바닥에 떨어진 개털도 눈에 잘 띈다. ‘개와 사람을 위해 설계된 집’이라고 할 만하다.

 

강 선생이 경기도 의왕 청계산 자락에 이런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건 1997년부터다. 그전까지는 그도 남들처럼 도심 속 아파트에서 살았다. 무엇이 그를 극단적인 동물 애호가로 변화시킨 걸까. 최근 『개와 꽃과 친구가 있는 날』(위즈덤하우스·사진)을 펴낸 강 선생의 의왕 자택을 찾았다. 그는 “천수를 누린다”고 소개한 개 열두 마리, 닭 열 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매일 새벽 6시 개똥, 닭똥 치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할 만큼 동물 사랑에 열정적인 이유를 묻자 그는 부드럽고 분명하게 답했다.

“인간은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모든 생명에겐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그는 아파트 생활을 접고 지금 사는 단독주택을 지어 이사한 것도 개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96년 동물병원 앞에 버려진 진돗개 ‘누룽지’를 데려다 키웠는데, 금세 체중이 40㎏에 이를 만큼 자랐어요. 아파트에서 키우기 어렵게 된 참에 막연한 꿈이었던 전원생활을 시작하기로 했죠.”

그렇게 시작해 열두 마리로 늘어난 가족 같은 개들은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처음엔 내 개만 예뻤는데 점점 다른 개들에게도 관심과 애정이 확장되더라고요.”

그는 “매일 밥과 물을 나르며 동네 떠돌이 개들을 보살폈다”고 했다. 그러다 그의 집에 와 살게 된 개들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줬다. 외국으로 보낸 개도 여럿이다. 덩치가 너무 커 다른 집으로 못 간 개들이 지금 그와 같이 사는 개들이다.

2년 전부터는 닭도 키운다. 닭들을 “금동아” “금순아”라고 부르며 ‘엄마’를 자처했다. 닭장 안에는 그가 앉아 책도 보고 차도 마시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사람을 피하는 닭들이 강 선생 옆에서는 평화롭게 모이를 쫀다. 닭장 옆 텃밭에선 상추·호박·고추·토마토 등이 자란다. 그의 말대로 “소소할지언정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행복이 피어나는 공간”이다.

생명을 만나 가꾸는 인연에는 마지막도 있는 법. 그를 청계산 자락으로 이끈 개 누룽지가 열세 살 때인 2009년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방에는 누룽지를 포함해 개 일곱 마리의 유골단지가 우두커니 놓여있다. 그는 “내가 죽으면 같이 묻어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노령견의 뒤치다꺼리가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암에 걸려 지난해 열여섯 살로 숨진 개 ‘두부’의 밥과 약을 챙기느라 투병기간 3년 동안 여행 한 번 못 갔다. 나이가 들어 뒷다리가 마비된 대형견들은 안아 옮겨가며 대소변을 가려주고 목욕을 시켜줬다. 손수레 형태의 휠체어를 만들고 계단에 경사로도 설치했지만 강 선생 허리에 무리가 왔고 결국 두 차례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 개들도 고마운 걸 안다. 와서 핥아주고 비비며 마음을 표현한다”고 했다.

이런 삶은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연과 하나로 동화된 경지에 이른 듯하다. 병충해로 잘려나간 큰 나무 둥치를 시멘트로 주조해 조각작품을 만들고 나무의 나이테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읽어내는 작업을 선보였다.

청계산 등산 때 지팡이로 썼던 나뭇가지는 2014년 북서울미술관 전시회에 아예 ‘한 그루 나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출품했다. 그는 이 작품에 이런 설명을 붙였다. “언젠가 한 그루 푸르른 나무였던, 이제는 늙어버린 내 몸을 받쳐주고 여전히 그 신비한 힘으로 이끌어주는 나의 동반자이자 친구.” 그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보인다.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삭막한 세상이 좀 더 살 만해지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의왕=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